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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육아아빠 없나요?
강형석 육아하는 아빠 2017년 05월호



아내가 복직해야 했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맡았다. 지난 반 년간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다. 몇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해 버리기엔 어딘가 서운한, 인생의 가치와 방향을 다듬으며 무수한 날들을 머리 맞대 내린 결정이었다.


음을 정하고 나자 일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아내가 복직하기 전에 퇴직한 뒤 ‘인수인계’ 시간을 가졌다. 기저귀 갈기부터 엉덩이 씻기기, 온몸으로 저지레하면서 먹는 아이를 기다려주며 효율적으로 밥 먹이는 방법, 아기띠로 낮잠 재우는 요령과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고 포대기로 업는 법도 배웠다. 무엇보다 육아 노하우는 머리가 아니라 온전히 몸으로 익히는 것이었기에 인내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아내의 복직도 코앞에 다가왔다. 자대 배치를 앞둔 훈련병의 마음이 됐다. ‘이제 실전이다.’


몇 번 아이를 울리기도 했지만 훈련받은 대로 그럭저럭 잘 해내었다. 그런데 무언가에 익숙해져 자신만만해질라 치면 아이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쑥쑥 커나갔다. 그러면서 부모가 갖춰야 할 덕목과 기술도 나날이 추가됐다. 책장 넘기기에 꽂힌 아이를 위해 하루에 수십 권의 책을 보여주고(같은 동작의 반복. 정말 지루하다), 걸음마연습을 하는 아이 손을 잡아주는 것(허리가 빠질 것 같다), 어디든 올라타기 시작한 아이가 다칠 새라 곁을 하염없이 지키는 것(역시 지루하다), 하루 종일 업어달라고 하는 것(쪼그만 게 무겁다) 따위는 초급에 불과하다.


변화는 육아 외적인 것에서도 왔다. 나는 요즘 부쩍 수다스러워지고 있다. 말문이 트이지 않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건네다 보면 ‘어른의 대화’에 목이 마른다. 처음에는 다양한 세계맥주와 디저트를 사다주며 나의 ‘육퇴(육아퇴근)’ 후 말벗이 돼주던 아내도 점점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느려터졌던 손은 몰라보게 빨라졌다. 설거지도 청소도 제한된 시간 안에 매일 하다 보니 숙련도가 높아졌다. 아내가 흐뭇해하는 게 보인다.


아빠가 아이를 돌본다고 하면 주변에서 “부럽다”는 찬사가 쏟아진다. 육아휴직 중이 아니라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면 “아, 그래요”라는 대답 뒤에 무거운 말줄임표가 느껴진다. 번갈아 회사를 쉬면서 아이를 키우는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일까 아니면 철이 없는 걸까. 철이 없다 해도 고민이 없었으랴. 많은 한국의 30대 부부가 그러하듯 집 대출금에 한숨을 쉬고 맞벌이 땐 몰랐던 생활비 규모에 놀라며 이러다 경력 공백이 길어져 재취업에 타격을 입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그럴 땐 아이의 미소를 본다. 아빠와도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하고 건강히 자라는 아이가 안겨주는 안도감이 잠시나마 걱정을 포근하게 덮어준다.


나의 무모해 보이는 퇴사는 아이를 보내기로 계획했던 어린이집의 0세 반이 갑자기 없어진 사건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남의 일인 줄 알았던 보육대란에 막상 끼고 보니 ‘아이는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캐치프레이즈의 공허함이 뒤통수를 때렸다. 부족하기만 한 어린이집, 남성 육아휴직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의 직장, 운이 좋아 원하는 어린이집에 보내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발을 동동 굴러야 할 날들.


그렇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확신하게 됐다. 스웨덴의 ‘라테파파’처럼 사회적·경제적 걸림돌 없이 육아하는 아빠가 놀이터를 가득 채워야 비로소 새로운 대한민국이 될 거라고. 남성이 걱정 없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임신했다고 눈치 받고 육아휴직 쓴다고 퇴사를 종용당하는 여성들도 더는 없을 것이다. 하, 우선은 아빠육아를 하는 친구를 한 명이라도 사귀고 싶다. 이 마음, ‘아빠’들과 나누고 싶다.


“어디 주변에 육아아빠 없나요? 16개월 된 딸을 둔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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