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새해를 종각 거리에서 맞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덧 꽃 피는 4월이 훌쩍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개월 동안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시민의 힘을 보여준 촛불집회와 여기에 반대해 일어난 보수세력의 태극기집회, 그리고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과 구속까지.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여기저기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내 앞에 닥친 현실은 여전히 막막하다.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으로 채용사이트에 뜬 채용공고를 보며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주 2회 다른 취준생들과 만나 자기소개서 첨삭, 면접연습 스터디를 한다. 무미건조한 삶이다. 하루하루 날짜가 지날수록 컴퓨터 ‘취업준비’ 폴더에 쌓여가는 30개가 넘는 자기소개서에는 기업들의 질문에 맞게 나의 조그마한 경험들이 여기저기 뻥튀기 돼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중·고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작성할 때 꿈꾸던 멋진 미래의 모습들은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우울한 느낌을 받는다.
TV에서 노량진의 공시족과 취준생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리를 뻗고 누우면 꽉 차는 쪽방 고시원에서 자고, 끼니를 어떻게 때울지 걱정하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뵐 수 없는 많은 청년들이 나왔다. 시험 합격과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나와 같이 남들과는 다른 미래를 꿈꾸는 청년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와는 달리 내 마음속에는 희망이 생겼다. 최근 일어난 여러 정치적 사건들에서 행동하는 국민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지난해보다 경제상황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헬조선’, ‘지옥불반도’같이 대한민국 사회를 비난하던 단어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사용 빈도가 많이 줄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희망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사람들이 가진 희망이라는 불씨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결정하는 일이 남았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치열했던 각 당의 경선이 끝나고 대선주자들이 정해졌다. 하지만 유권자로서 아쉬운 것들이 많다.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만 넘쳐날 뿐 각자의 공약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오히려 지역주의와 정치성향에 따른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것 같다.
바쁘고 힘든 금요일에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토요일, 일요일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선 후보들이 ‘희망이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을 뽑는다 해도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적·경제적 상황을 해결할 엄청난 방법을 제시하고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안다. 다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사람들은 힘든 현실을 버티면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의 씨앗을 심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