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이를 둔 친구의 말로는 요즘 엄마들 사이에선 아이들에게 수영을 배우게 하는 게 필수란다. 수영하는 모양새가 못나도 좋으니 제발 물에는 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어떤 친구는 원전 반대운동 카페에 가입하고 서명을 했단다. 그 친구의 남편은 울진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한다.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지만, 말하는 그들도 듣고 있던 나도 마음속으로는 웃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은 안전한 나라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무서운 사건들이 많았다. 직접 겪어보니 우리가 얼마나 위험에 대책이 없고 무지한지 깨닫게 됐다.
“물론 한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날 리 없겠지만…….” 모 프로그램 사회자의 멘트를 듣고 얼마 되지도 않은 2016년 9월 12일 저녁. 누구도 예상하지 않던 ‘큰 지진’이 진짜 일어났고, 나는 진원지가 속한 경주에서 땅에 천둥이 치는 듯한 5.0대 규모의 지진을 두 번이나 온몸으로 경험했다. 각 지진 후 10분쯤 지나서 도착한 긴급재난문자는 단지 ‘강도가 몇인 지진이 일어났다’는 알림에 불과할 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차량들이 몰려 교통은 마비됐고, 모바일 메신저도 갑자기 되지 않아 애가 탔다. 평소보다 4배의 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한 아파트 주차장은 돗자리를 깔고 밖에서 밤을 새우겠다는 주민들로 가득했다.
한동안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체육관이 있는 큰 공원에서 밤을 보냈고, 우리 가족도 계속되는 여진으로 자다가도 몇 번씩 깨서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기차와 트럭 소리마저 전부 지진 같아 심장이 쿵쾅거렸고, 인간 지진측정계가 된 것처럼 규모 1.9의 지진마저 감지할 정도로 예민해졌다. 방송 채널마다 온통 경주 지진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우리가 그대로 집에 있어도 되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었다. 평소엔 까맣게 잊고 지냈던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존재에 처음으로 겁이 났다. 규모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게 내진설계가 돼있다고는 하지만, 더 큰 지진이 정말 오지 않을까 의심이 들 뿐이었다.
전문가들이 ‘곧’ 멈출 거라고 이야기한 것보다 더 질질 끌던 여진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그날의 공포를 잊진 못하지만, 매일 또 다른 지진을 걱정하며 살 수는 없기에 점점 무뎌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우리 대신 계속 더 많이 걱정하고 행동해주기를 바란다.
5월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중 탈핵로드맵,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굵직굵직한 이름의 정책도 필요하고 꼭 실천되기를 바라지만,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대비훈련과 예방책도 함께 이뤄졌으면 한다. 사건이 터져서야 시민들이 알 수 있는 매뉴얼의 보강은 툭하면 바뀌는 보도블록과 다름없다. 요즘 초등학교에 안전과목이 추가됐다고 하는데, 동영상으로만 접하는 수업은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위험에 전혀 대비가 안돼 있거나, 예상할 수 있으나 ‘설마’라는 병에 걸린 안전불감증 환자들이었다. 국민들의 희망을 짊어질 새 대통령과 새로운 정부는 여러 상황에 대비한 훈련과 교육으로 예방주사를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한 처방전까지 내려주길 기대한다. 아울러 사소한 사항도 무시하지 않는 안전의식이라는 비타민을 모두가 꼬박꼬박 챙겨먹는다면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오늘은, 그리고 내일은 안전한가요?”라는 질문에 의심 없이 “네”라고 누구나 답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