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3년에 결혼했다. 낮은 금리로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해서 전세가 점점 더 귀해지던 시기다. 전셋집이 나오자마자 상태도 보지 않고 계약을 해버렸다는 이야기는 중개인이 써먹는 단골 멘트였다. 실제로 나 역시 망설이다 중개인에게 계약하겠다고 전화했을 때 “그 집은 방금 계약됐는데요”라는 쓰린 경험을 몇 번 맛봤다. 결혼식은 다가오고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때 다른 전셋집이 나타났다. 그 집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집을 보자마자 현장에서 집주인에게 계약금을 송금했다.
전세를 구했다는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2년이 흘렀다. 주변 시세가 1억원 올라 있었다. 실제로 근처에 사는 지인이 재계약 하면서 1억원을 올려줬다. 반면 고소득자가 아닌 우리에게 1억원이 있을 리 없었다. 2년 전 전세금도 부부 모두가 탈탈 털어 겨우 마련한 돈이었다. 게다가 아기가 생겨서 돈을 모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집주인은 사정을 이해해줬다. 시세보다는 저렴하게 재계약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전세는 꾸준히 올랐다. 두 번째 재계약 시점, 그러니까 결혼하고 만 4년째, 전세 시세가 4년 만에 1억5천만원 정도 올라버렸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린다는 말을 먼저 꺼내진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돈도 없었고 재계약 때마다 마음 졸이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새로운 터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다른 지역도 전세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좀 더 외곽에 있는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지만 전세살이의 고달픔을 끝내서 흐뭇했다. 다만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다.
세입자는 계약 맺을 때도 을이지만 계약이 끝날 때도 을이다. 전세금 반환 과정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억 단위가 움직이는 서울에서는 전세금 반환 시점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실랑이가 벌어지기 일쑤다. 일부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엔 전세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틴다. 나는 결혼하기 전 혼자 살던 집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집주인은 계약이 끝나고 집을 뺀 후로도 세 달 동안이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줄 돈이 없으며, 소송을 걸 테면 걸어보라는 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계약 종료에 맞춰 전세금을 무사히 받았다.
그래도 나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다. 어쨌든 전세를 구했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4년 동안 살았으며, 제때 전세금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대한민국 전체로 보자면 상황이 좋지 않다. 전세는 점점 귀해지고 있으며 가격도 많이 올랐다. 지난 30년간 전세가 매매보다 약 2배 많이 올랐다고 한다. 전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해 돈을 모은 뒤 내 집을 마련했던 부모 세대의 방식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부 전문가들은 저성장 저금리에서 전세는 결국 소멸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여전히 신혼부부나 사회 초년생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형태가 전세라는 점이다. 이것저것 다 고려해도 주거비용이 가장 적게 들기 때문이다. 모쪼록 새로운 정부에서는 신혼부부나 사회 초년생을 위한 다양한 임대상품이나 제도를 마련해줬으면 한다. 더불어 전세금 반환도 계약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적인 절차 및 조치가 보완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