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전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행복한가요?”, “자신의 행복을 점수로 나타낸다면 몇 점인가요?”, “행복의 정도를 생각할 때 떠오른 것이 무엇인가요?” 등의 질문을 던져봤다. 행복점수가 생각보다 낮았다. 모두가 시험 걱정이 떠올랐다고 한다. 질문을 바꿔봤다. “일주일 후에 자신의 행복점수는 몇 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번에는 점수가 크게 높아졌다. 무엇이 떠올랐는지 물어보니 “시험이 끝났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것이 없을 듯해서” 등과 같은 답변들이 돌아왔다.
궁금한 것은 실제로 일주일 후에 학생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면 오늘 예측했던 행복점수와 같은 대답일까? 현재 시점에서 미래 자신의 태도나 감정을 예측한 것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은 심리학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삶의 질이나 행복도 미래의 현실이나 감정에 대해 우리가 현재 내리는 예측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행복한지 떠올릴 때도 무엇을 어떻게 조망하는가와 깊게 관련된다. 심리학의 해석수준(construal level) 이론에 따르면 미래의 일은 추상적이고 바람직성이라는 속성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한다. 왜 이 일이 필요한지 그 이유와 의미, 목표를 묻는다. 즉 왜(why)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지금 당장은 그 일을 하기가 쉬운지 어려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 구체적인 절차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즉 어떻게(how)가 떠오르는 법이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어떻게’ 보는가보다는 ‘왜’ 보는가로 관점을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지난주 던져준 과제도 ‘숙제를 한다’에서 ‘공부를 한다’로, 나아가 ‘자기개발을 위해서 한다’로 바꿔보라고 했다. 심지어 ‘사회에 보탬이 되려고 한다’와 같이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타인도 배려하겠다는 도덕적 의지(virtue)까지도 담을 수 있는 이유를 부여하고 해보라고 충고했다. 행복점수가 조금은 높아지지 않았을까?
개인의 행복은 물론 사회적 행복지수도 도덕적 의지와 관련이 깊다. 국외 사례지만 핵폐기장 건설 반대와 관련해 심리학자들이 현장연구를 한 적이 있다. 핵폐기장 설치 예정 지역에서 주민들의 찬반투표를 했더니, 부동산 가격 하락이나 건강 문제 등의 우려에도 50% 이상이 찬성했다. 그런데 반대자를 설득하고 찬성률을 높이기 위해 그 지역 주민에게 상당한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이후에는 찬성률이 오히려 25%로 낮아졌다. 왜일까? 인센티브가 적어서 화가 난 것일까?
지금까지는 핵폐기장 건설에 대해서 찬성을 해야 할 이유가 하나뿐이었다. 도덕성 혹은 책임감이다. 국가를 위해서 누군가는 수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센티브가 제시된 후에는 찬성을 해야 할 이유가 두 개로 늘었다. 도덕성과 인센티브다. 해야 할 이유가 증가하면 선택이 늘어나는 것이 경제학의 논리지만, 인간의 심리는 그렇지 않다. 인센티브가 도덕적 의지를 손상시킨 것이다. 도덕적 의지에 의한 경우와 인센티브에 의한 경우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도움을 쉽게 주는 것은 상대가 행복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