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에너지와 자원은 일반 대중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였다. 석유와 광물 등 주요 자원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 열강들의 차지였고, 관리는 국가 차원에서 진행됐다. 지금은 많은 민간기업들이 에너지산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대부분 매머드급의 대기업으로 일반인들은 함부로 참여할 수 없는 분야다.
그동안 에너지시장이 제도권과 핵심 소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은 수급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망(GRID)’ 때문이다. 자원의 유통망과 이를 전국 각지로 보내는 배관망, 발전을 한 후 전기를 보내는 전력망까지 망의 연결을 통해 에너지 수급 시스템은 완성된다. 그만큼 한 국가에서 에너지망이 가지는 위치는 절대적이며 안보와도 직결된다.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전력망, 가스배관망 등을 국가기반시설로 정하고 그 운영을 정부와 공기업에 맡겨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에너지는 제도권 시장에 머물러있었고, 커다란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각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중앙전원 방식이 대세로 정착됐다.
중앙전원의 아성은 최근 분산전원이라는 개념에 흔들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몇몇 대형 발전소가 전력망을 통해 전국에 전기를 공급했다면, 이제는 각 지역별로 중소 규모 발전시설을 통해 자체 전원을 확보하자는 것이 분산전원이다. 분산전원의 단위는 점점 작아져 이제는 마을·가구 단위 수준의 에너지 자급자족까지 시도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는 태양광·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존 발전소와 달리 따로 연료를 공수해올 필요가 없고 효율을 위해 대규모 설비를 지을 필요도 없다. 개별 소비자로 하여금 망에 대한 의존도를 떨쳐내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사회적 배경도 한몫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규모 발전소는 물론 송전망 건설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건설보다 사전작업인 환경평가와 지역민 설득, 지자체 허가 등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해결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추세는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발달로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전력생산의 비지속성을 ESS가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햇빛과 바람이 있을 때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전기를 생산하고 밤에는 저장해놓은 전기를 사용한다. 그래도 부족한 전력은 이웃에게 빌리고, 남는 것은 반대로 나눠주기도 한다. 과거에는 사업자들이 생산하고 공급한 전기를 받아 쓰기만 하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생산자의 역할까지 하는 ‘에너지 프로슈머’가 된 것이다.
바야흐로 내 마을이, 내 집이 발전소가 되는 분산전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분산전원은 국가 전력체계 안전성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대용량 전원설비 중심의 시스템은 한 번에 다수의 사용자를 커버할 수 있는 편리성이 있지만, 그만큼 설비 고장에 따른 리스크도 크다. 2011년 9·15 순환정전 이후 원전 납품비리 사건이 겹치면서 한동안 원전 가동중지로 전력난에 시달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분산전원은 각 지역별로 전원을 구성하기 때문에 개별 설비 고장으로 인한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적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세계는 신기후체제로 접어들었다. 기존 화석연료의 퇴장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새로운 전원체계 구성은 전 지구적 숙제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스마트시티, 마이크로 그리드 등 다양한 시도들이 향하는 목표점은 다수의 소비자가 프로슈머로 참여하는 분산전원시장 구축이다. 이미 많은 개도국들은 전력부족 문제의 해법으로 전국 단위 송전인프라 없이도 도입할 수 있고 프로젝트별 공사비도 적은 분산전원 모델을 주목하고 있다.
불과 5년 안에 누구나 전력을 만들 수 있고 이를 판매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본다. 그만큼 관련 상품도 서비스도 많아질 것이다. 최근 에너지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통신사들은 통신+전기요금 묶음상품을 선보일 것이고,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며 전기쿠폰을 받을 수도 있다. 여름에 누진제가 걱정되면 휴가를 떠난 옆집 이웃의 전기를 이용하는 아이디어 상품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