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를 그만뒀을 때 사람들은 미친 것 아니냐고 했다. 어렵게 들어간 자리를 버린다며 철없다고 했다. 사회적 지위와 높은 연봉을 포기한 걸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대학원을 다니다 한 학기 만에 자퇴하자, 사람들은 입학금과 등록금이 아깝지 않느냐고 했다. 섣부른 판단이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하지만 백 번 고쳐 생각해도 내 길이 아니었다.
포토샵을 배우고 싶어 국비무료과정 학원을 다니자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다. 그 시간에 재취업할 준비를 하라고 조언했다. 고졸과 무직자가 수강생의 대부분인 학원에서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나의 학력을 보고, 요즈음 취업이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요즈음 SNS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할 때 포토샵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서울 생활을 버리고 대전으로 이직하자 사람들은 왜 지방으로 가느냐고 의아해했다. 지방에선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 다녀온 후의 결정이었다. 메이요 클리닉은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 있지 않다. 인구 10만명의 소도시 로체스터에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기꺼이 찾아오고, 존스홉킨스대학병원과 함께 미국 병원 랭킹 1위를 다툰다. 회사가 어디 있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대전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대화를 더 많이 나누게 됐다. 퇴근 후에는 책을 읽거나 드로잉을 한다. 몇 년간 말로만 되풀이했던 운동도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엔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서 보내지 않아도 된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집값 덕분에 회사 가까운 곳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간을 번 게 아니다. 수년간 당연하게 여겼던, 그래서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저녁 시간을 되찾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며 부러워했다.
미국만 여행하자 지인들이 안부인사로 올해는 미국에 언제 가느냐고 묻는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서른 살이 돼서야 미국 땅을 밟았다. 흔한 어학연수나 유럽 배낭여행도 가본 적이 없다. 미국은 사춘기 시절 홍정욱의 「7막 7장」을 읽고 기회와 도전의 땅으로 각인됐던, 동경의 대상이었다. 비행시간 10시간 이상의 먼 나라를 간다면, 그곳은 미국이어야 했다. 처음에는 도시 풍경만 눈에 들어왔다. 해마다 미국을 가보니 그들의 삶이 내게 들어왔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행복하게 살라는 욜로가 유행이다. 나는 매스컴에서 말하는 욜로와 거리가 멀다. 여행을 많이 다니지도 않았고,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세계 일주를 떠나지도 않았다. 그럴 만한 배짱도 없다. 장난감이나 운동화 수집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지도 않을뿐더러 사진이나 레포츠에 빠져 값비싼 장비를 구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생은 한 번이기에 늘 신중했다. 과감히 결정을 내리고 인생의 판을 바꾸기보다 적잖게 방황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을 걷다 이탈해봤고, 사람들이 많이 걷지 않은 길이어서 불안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길을 걸을 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황하는 동안 나 자신과 대화하게 됐고,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
어쩌면 욜로는 인생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방증이다. 아버지 세대에는 직장과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게 당연했고,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었다. 자신의 인생보다 가족, 직장, 나라에 헌신하라고 교육받았다. 이러한 산업화 시대의 논리는 깨진 지 오래다. 최근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마음이 욜로라는 말로 표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한때 우리는 행복을 유예하고, 힘든 일상을 버티는 걸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행복은 저 멀리 있는 목적지가 아니다. 지금이 행복하면 그게 욜로스러운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