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곧 새로운 불행을 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사람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를 읽고 밑줄 친 구절이다. ‘인생의 무게에 물건이 주는 불행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도 무색하게 미니멀 라이프는 갈 길이 멀었다. 버리지 못하는 물건과 습관들 사이에서 한숨을 쉬다가 다시 미니멀 라이프 고수들의 책을 읽었다. 그 책들 사이에서 만난 신미경 작가와 서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버려야 한다는 집착까지 내려놓으면 미니멀 라이프에 더 가까이 다가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슈즈홀릭, 워커홀릭이었다고 들었다. 미니멀 라이프로 방향을 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7년 차 직장인이었을 때 번아웃(burnout) 증후군을 경험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힘들긴 했어도 나름 즐겁게 일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갖고 싶었던 것을 사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물건이 주는 위안은 대체로 2주를 넘지 못했고,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구입한 물건값을 지불하고 그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값을 내기 위해 다시 격무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성과에 집착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아차 싶었다. 일을 잠시 쉬어야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그때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면?’이라고 생각해보니 집 곳곳에 쌓여 있는 물건들이 모두 짐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니 아무 의미 없는 물건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비움을 시작했다.
미니멀 라이프 전후의 삶을 비교한다면? 패션에 집착했던 시절, 엄청나게 구두를 수집해 100켤레도 넘게 가지고 있었다. 심심하면 백화점에 갔고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물건을 샀다. 다음 달 카드값을 고민하는 게 끔찍했고, 현금을 만져본 기억도 별로 없다. 신용카드의 노예였다. 지금은 쇼핑을 자주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이 생기면 몇 개월을 고민한다. 주전자 하나 사는 데 3개월 이상을 고민한 적도 있다. 할부는 하지 않고 일시불로 결제한다. 신용카드를 쓰긴 하는데 주 단위로 선결제를 하면서 통장잔고를 관리하고 있다. 큰 비용이 드는 물건을 살 때엔 돈이 다 모인 다음에 구입한다. 물건 관리에 더 신경을 쓴다는 점도 달라진 부분이다. 신발은 10켤레 정도 갖고 있는데 깔끔하게 잘 관리된 것을 십분 활용할 수 있어 더 좋다. 수준에 맞게 소비하는 법을 알게 됐고 덕분에 불안할 일이 줄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부터 접근하면 쉽다. 나의 경우 맨 처음 가방 안을 정리했다. 안 쓰는 카드를 해지하고 쓸데없는 멤버십 카드는 만들지 않고 화장품은 립스틱 정도만 챙겼다.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가방을 비우는 데 성공하면 다른 부분에 접근하는 것이 쉬워진다. 작은 것에서 시작해 성취감을 맛본 뒤 서서히 큰 것으로 넘어가는 거다. 매일 작게 실천하는 것이 단번에 해내는 것보다 내 경우엔 더 나았다.
버리고 후회했던 건 없나?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옷이나 화장품과 같이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재는 버리고 나서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는데 피아노를 정리하고 나서는 후회했다. 당시에는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어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돼 짐이기도 했고. 그런데 물건에 집착하는 생활이 사라지니 오히려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일에 더 관심이 쏠리더라. 피아노는 가장 좋아하는 악기라 계속 생각이 났다. 요즘 다시 구입할지 고민 중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을 남겨두는 것이라고 들었다. 나는 내 생활을 미니멀 라이프가 아닌 ‘에센셜 라이프(essential life)’라고 부른다. 미니멀 라이프가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는 무소유에 가까운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뉘앙스라면 에센셜 라이프는 정말 핵심이 되는, 가장 좋아하는 것만 사용하는 ‘취향적 삶’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나는 그릇 하나로 밥도 먹고 물도 마시는 삶이 미니멀 라이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예쁜 그릇들에 좋은 식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이 내겐 미니멀 라이프다.
소비생활에도 변화가 있었겠다. 소비의 지향점이 달라졌다. 보여주기식 소비가 아니라 스스로가 만족하는 소비에 집중하게 됐다. 공짜로 얻었지만 내 취향은 아닌 기념타올 50장보다는 5장뿐이지만 품질 좋은 새하얀 호텔 수건 같은 사소한 것들이 삶을 밀도 있게 채워주고 있다. 나만의 규칙도 만들었다. 책은 뮤지엄 도록을 제외하곤 e-book을 구입하기로 정해 공간에 대한 부담 없이 읽고 싶은 책은 산다. 공연, 여행 등 경험적 소비는 예산 내에서 마음껏 쓰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외모를 꾸미는 데 비용을 전혀 쓰지 않는 것도 아니다. SPA 브랜드의 옷을 사지 않고 좋은 품질의 옷을 분기별로 한 벌(또는 한 장) 정도만 사기로 정해뒀다. 친구들에게 “유니폼 입고 다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내 스타일 같아서 만족도가 더 높다. 이런 생각이 영역을 넓혀 인간관계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두텁게 교류하는 것이 더 좋아졌다.
한두 번은 물건과 삶을 정리할 수 있겠지만 그걸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미니멀 라이프의 유지가 어려운 이유는 절약생활로 오인하기 때문 아닐까. 자신의 욕망을 억눌러 소비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나의 경우에도 생활 규모를 줄이는 것은 좋아하는 걸 한 번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쉬웠다. 비움 이후 어떤 방향으로 살지도 생각하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해 가장 좋은 점은? 우선순위에 맞춰 생활과 주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하고 물건을 함부로 구입하지 않게 됐기 때문에 이전보다 금전적 여유가 생겼다. 물건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줄어드니 큰 공간이 필요치 않아 넓은 집에서 전세로 사는 대신 청소도 관리도 쉬운 작은 집을 사서 앞으로의 주거 불안을 없앴다. 그 공간에 꼭 필요한 물건만 들여 군더더기 없이 꾸며두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엔 친구들을 초대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요즘은 손님 초대도 많이 하고 집에서 모여 노는 것이 즐겁다. 좋은 점을 말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어렵다는 독자들에게 팁을 하나 알려준다면. 주변에 온통 맥시멀리스트뿐이라 나도 책을 통해 시작했다. 「월든」, 「심플 라이프」,「행복의 가격」, 「조화로운 삶」 등 책에서 얻은 조언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실천기를 올리며 완주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의 응원과 공감이 도움이 됐다. 혼자 충동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일시적인 이벤트에 그칠 확률이 높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만들고 그에 맞는 스타일을 실제로 구현한다면 평생을 가져갈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직 비울 것이 더 남았나?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 이후로 불필요한 일들을 없애면서 그 흔한 버킷리스트, 인생의 포트폴리오, 마스터플랜 같은 것들이 사라졌다. 대신 ‘나만의 전통 만들기’가 작은 과제로 남았다. 특정 목표 없이 좋아서 반복하고 싶은 것들로 일상을 채우는 일이다. 예컨대 아침에는 스트레칭, 간단한 아침 꼭 챙겨 먹기가 있고, 주말은 나를 위한 ‘교양의 날’로 지정해 책을 읽고 공연이나 전시에 간다. 하고 싶은 것들을 목적 없이 하다 보니 강제성이 없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어 있더라. 나만의 전통,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