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게 보자. 한국 바이오헬스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2%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헬스산업 규모는 1경174조원으로, 한국은 100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세계 1위 제약사인 화이자의 한 해 매출보다도 적다. 바이오헬스산업은 대표적인 고위험·고수익 구조다. 신약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1~2조원, 약 10년이 소요된다. 평균 5천~1만여개의 후보물질 중 하나만이 신약으로 허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화이자, 노바티스 등이 매년 10조원 이상을 연구개발(R&D)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은 성공의 열매가 매우 달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의 주요 제약사들이 개발 중인 신약은 지난해 11월 기준 노바티스 267개, GSK 196개, 화이자 193개, 존슨앤드존슨 173개 등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같은 시점에서 대웅제약 42개, 종근당 33개, 한미약품 31개, SK케미칼·유한양행 각 23개씩이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다케다제약 103개, 아스텔라스 95개, 다이이찌산쿄 92개 등과 차이가 크다. 매출에서의 체급 차이가 R&D 투자여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상황이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15년 상장 국내 제약 기업들의 연구개발비는 1조1,694억원으로, 아직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기엔 부족하지만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민간투자도 활발해져 2016년 이후 벤처캐피털 신규투자에서 ICT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기회도 분명히 있다. 임상시험 인프라와 세계적 수준의 ICT 융합 능력이 한국의 강점이다. 보통 임상시험에 걸리는 시간은 6~7년으로, 전문역량과 고비용이 요구돼 신약 개발 비용의 70%가 여기에 들어간다. 국내 임상시험 건수는 2000년 33건에서 2015년 675건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가운데 296건이 해외 제약사에 의한 것일 정도로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서울의 경우 미국 휴스턴과 더불어 임상시험 수 1~2위를 다툰다. 4차 산업혁명 기반도 잘 갖춰졌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10년 이상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전망이다. 막대한 자료를 검토해야 하는 초기 후보물질 탐색 기간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 패러다임이 바뀌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주도해온 신약 개발 분야에 국내 업체들도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게 됐다. 목표는 연간 1조원 이상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글로벌 신약이다. 4~5년 안에 혁신 신약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약품의 당뇨병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YH25448’, 종근당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CKD-506’, 녹십자의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톡신 제제 ‘나보타’ 등이 꼽힌다. 한미약품의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글로벌 파트너사인 사노피가 지난해 말 글로벌 임상 3상 진입과 미 FDA(식품의약국) 허가신청 계획까지 발표했다. 국내서 개발 신약 중 처음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유한양행의 ‘YH25448’은 곧 임상 2상에 돌입한다. 임상 1상에서 대조약과 비교해 우수한 효과와 안전성을 보였다. 유한양행은 올해 안에 임상 2상을 마무리한 뒤 글로벌 라이센싱 아웃(기술수출)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종근당의 ‘CKD-506’은 지난해 유럽 임상 1상 종료 후 올 상반기 류마티스성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할 예정이며, 녹십자 ‘헌터라제’는 제약산업의 본토인 미국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대웅제약의 ‘나보타’는 지난해 미 FDA 허가를 신청했으며, 올해 안에 미국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