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고객이 본인을 “미스 김”이라고 부른다며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한 여성이 상담을 해왔다. 직장 4년 차 대리에 비혼인 2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본인의 이름이나 “김 대리”라고 부르면 족할 것을 굳이 “미스 김”이라 꼬박꼬박 부르는 게 몹시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고객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으니 직접 시정해달라고 요청하기가 조심스러워 상사에게 얘기했지만 답변은 “중요한 고객이니 네가 좀 참으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초반의 여성 역시 고객과의 만남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그녀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아가씨가 나왔네. 이 일은 전문가가 해야 하는데”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가씨’라는 단어 자체, ‘아가씨’라면 전문가가 아닐 거라는 편견,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은 무례함이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편 직장에 다니는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애는 어떻게 하고 다니세요?”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고 했다. 30대 후반의 여성에게는 당연히 아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 육아의 책임은 여성인 엄마에게 있다는 생각이 전제돼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남성에게는 한 번도 묻지 않는 질문이니까 말이다. 차별은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형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국가·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을 이유로 고용, 재화 등의 이용, 교육 훈련 등에서 우대, 배제,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일을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마다의 역사와 고유성을 지닌 ‘사람’이 아닌 ‘여성’으로만 불리고, 평가되고, 규정되는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명백한 차별이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여성의전화는 ‘먼지차별’ 캠페인을 하고 있다. 먼지차별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도처에 깔려 있고, 유해하며, 늘 치우지 않으면 쌓이는 ‘먼지’와도 같은 차별을 뜻하는 말로 한국여성의전화가 만들어낸 단어다. ‘미스 김’과 같이 본인의 직업과 상관없이 혼인 여부에 따른 호칭을 여성에게만 사용하는 것, 업무상 만난 자리임에도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가씨’로 부르고 전문가일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 ‘사람’이기 전에 성역할 고정관념에 근거해 ‘어머니’로만 간주하는 것 모두 먼지차별이다. 하지만 먼지차별은 문화와 관습, 혹은 칭찬과 걱정의 이름으로 자리 잡아 차별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따라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별것 아닌 일’로 시비를 거는 ‘예민한’ 사람 취급받기 쉽다. 한 사회의 언어는 그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사고를 반영한다. 성차별적 언어가 우리 사회 성차별의 결과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성차별적 언어는 또한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성차별적 언어에 대한 문제제기는 ‘별것 아닌 일에 예민’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보다 평등하게 만들어가기 위한 성찰이자 실천이다. 여류 시인, 여장부, 미혼모, 미망인, 과부와 같은 수많은 단어들이 내포한 성차별성을 알아채고 대안적인 단어를 모색하고 사용하는 것은 결코 사소하지도 쉬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본인이 바꿀 수 없는 특징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기꺼이 예민하고 불편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