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고발당한 최현희(지난 4월 4일 무혐의 처분) ‘마중물샘’의 말대로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의 목격자이자 참여자다. 2018년 지금이 역사적인 순간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2018년은 기록되고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기억을 위한 기록은 이미 시작됐다. 세계적 권위를 지닌 퓰리처상이 ‘미투’ 운동을 촉발한 뉴욕타임스와 뉴요커에게 돌아갔다. 미투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러한 흐름에 역행해 펜스 룰이라는 펜스(fence)가 시도되고 있다. 펜스 룰은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2002년 의회 전문지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절대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학을 소개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보좌관을 반드시 남성으로 임명하며, 아내를 동반하지 않으면 술을 제공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술을 마시고 느슨해지면 그 방에서 가장 예쁜 갈색머리(여성)를 옆에 두고 싶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업무에서 배제돼야 할 사람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권력을 남용하려는 자신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의 전형적인 발언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 발언이 아내, 애인, 딸 등에게는 성폭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거짓을 진실처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부부강간, 데이트성폭력, 친족성폭력 등 성폭력 가해자의 대다수가 친밀한 관계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말이다. 게다가 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딸 같아서”라는 소리를 부끄러움 없이 내뱉고 있다. 사실 펜스 룰로 대표되는 2차 가해는 익숙하게 반복돼왔다. 다만 미투 물결의 의미와 세기를 아직도 가늠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문 채 이 물결을 거스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물결의 발원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멀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오래 전부터 성폭력 피해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다만 한국 사회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2016년에는 그동안 파편적이고 간헐적이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모이기 시작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살인 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연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혐오가 온라인에서만 만연하는 가상의 것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는 실재임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 후 페미니즘 도서 열풍이 불었고 지금까지 식지 않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대응하기 위해 페미니즘 책을 읽고 강연을 찾아 듣고 모임을 만들어 토론하며 공부하고 있다. 일생 동안 일상적으로 성차별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공부까지 하고 있는 데 반해 페미니즘 책을 읽고 강연을 듣는 남성들은 여전히 소수다. 성차별에 대한 민감성의 간극은 더욱 커지고 서로의 언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성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를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의 어려움도, 젠더권력관계에 대한 도전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린다. 이렇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도, 여성혐오도 심화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대결이 아니라 성찰이다. 가장 빠르고 정확한 변화의 길이 페미니즘 교육이다. 이미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섰고 청와대도 성평등 교육을 포함한 체계적인 통합 인권 교육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투의 물결이 어디로 흘러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우리 역할은 이 물결이 흘러갈 길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목격자이자 참여자인 우리의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