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장난감 브랜드 레고는 혁신의 상징이자 성차별 논란의 주인공이다. 구글 등 많은 혁신기업의 직원들이 레고 블록을 가지고 놀며 창의성을 발휘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최악의 장난감’으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레고의 여자 피규어는 남자 피규어보다 수가 적을 뿐 아니라 주로 주방에 있거나 쇼핑을 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남자 피규어가 일을 하고 상어와 함께 수영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1990년대 레고는 여자아이용 분홍색 블록 세트를 출시했지만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수년간의 연구 끝에 2011년 ‘레고 프렌즈’를 선보였다. 하트레이크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다섯 소녀가 쇼핑하고 미용실을 다니며 우정을 쌓는 콘셉트였다. 예상치를 웃도는 판매기록을 세우는 등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제품은 이듬해 미국의 비영리단체 CCFC(Campaign for a Commercial-Free Childhood)가 발표하는 ‘올해 최악의 장난감’ 1위로 선정되고 말았다. 레고 프렌즈의 주인공들은 집과 미용실, 쇼핑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의상이나 가구, 건물 블록 대부분이 보라색과 분홍색이었다. 또 얼굴보다 큰 립스틱과 빗을 들고 있는 여자 피규어는 서거나 허리를 굽히는 정도만 움직이고 손목을 돌릴 수도 없었다. 서고 앉는 것은 물론 달리기와 자동차 운전, 여러 가지 도구 사용이 자유로운 남자 피규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레고는 성차별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2015년에는 3명의 여성 과학자가 등장하는 ‘연구소 세트’를 출시해 최초의 전문직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다. 2016년에는 워킹맘과 전업주부 아빠가 등장하는 신제품을 공개해 주목받기도 했다. 레고를 포함한 많은 기업이 여성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남성용 제품은 파란색, 여성용은 분홍색이어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핑크 전략’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도 많다. 2013년 타이맥스(Timex)는 분홍색 여성용 GPS 시계를 선보였다가 마케팅 전문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프랑스 문구회사 빅(Bic)은 분홍, 보라 등 파스텔 색상의 여성용 볼펜 세트 ‘빅포허(Bic for Her)’를 출시해 시장의 조롱거리가 됐다.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Tesco)는 어린이 과학도구 세트에 ‘남자용’이라고 표기해 비난받은 후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여성 마케팅의 실패는 여성 리더십의 부재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레고가 끊임없는 논란에 휩싸인 이유를 경영진 21명 중 여성은 단 2명에 불과하고 이들마저 상품 개발과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맡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여성들이 혐오하는 선정적 광고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광고 제작 감독의 91%가 남성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OECD 국가의 평균 여성 임원 비율은 20.5%로 여전히 낮은 편이고, 한국의 2.4%는 비교조차하기 힘든 수준이다. 미국, 유럽 등의 소비재 시장에서 여성의 구매 비중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자동차, 전자제품 시장에서도 80%, 60% 이상의 구매가 여성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여성의 한 달 평균 용돈은 62만2천원으로 남성의 53만5천원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을 단지 시장의 절반으로 봐선 안 된다는 뜻이다. 안일한 핑크 마케팅의 관행에서 벗어나 직관성, 섬세함과 같은 여성적 가치를 중심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조직을 운영할 때 성공적인 여성 마케팅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