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개봉한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두 명의 뉴요커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티격태격하다가 끝내는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다. 멕 라이언과 톰 행크스의 통통 튀는 ‘케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을 최근 다시 보게 됐다. 그런데 20년 만에 다시 본 영화에서 배우들의 달라진 얼굴만큼이나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등장인물들이 종이신문을 읽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맨해튼에서 작은 어린이책 서점을 운영하는 캐슬린 켈리(멕 라이언 분)의 집에는 아침마다 뉴욕타임스가 배달된다. 그녀의 남자친구(아직 톰 행크스와 맺어지기 전이다)는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신문에 실린 기사를 자주 입에 올린다. 우리가 수시로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것처럼 그들은 신문을 일상에서 향유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세기말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아무래도 신문사에 몸담고서 출판을 담당하는 개인적 처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영화에서는 지금은 ‘유물’로 전락해버린 과거의 매체들이 소통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캐슬린은 아이디가 ‘NY152’인 조 폭스(톰 행크스 분)의 안부를 듣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리로 치면 PC통신인 미국 AOL에 접속한다. 또 유서 깊은 동네서점은 대형서점 체인의 공세에 무너진다. 당시 뉴욕 서점가의 현실을 반영한 설정이지만, 전 세계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일을 예견한 듯한 대목이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우리는 신문 읽는 사람이 ‘천연기념물’처럼 간주되는 사회를 살게 됐다. 책 읽는 사람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성인의 독서율은 역대 최저치인 59.9%를 기록했다. 성인 10명 중 4명은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도 상당수의 콘텐츠는 여전히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책은 정보와 지식을 집약하고 있는, 또 작가의 세계가 응축된 고품격의 텍스트다. 제대로 만난 한 권의 책은 평생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최후의 책’ 담론도 엄살 내지는 빗나간 묵시론이 됐다. 전자책시장과 겨뤄서도 종이책은 살아남았고, 책의 영역은 오히려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책의 좋은 점을 설파한다 해도 이미 책을 떠난 독자는 쉬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1994년 제정된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라 매년 9월은 ‘독서의 달’로 전국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독서 관련 행사들이 개최된다. 올해는 정부가 25년 만에 지정한 ‘책의 해’이기도 하다. 책 읽기가 그저 ‘진흥’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책을 사랑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 또 수고하는 출판인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 정부의 정책이 침체된 출판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기를 바란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콘텐츠를 갈구하고 있다. 책보다 먼저 위기에 처한 종이신문 업계 종사자인 나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저자들을 포함해 책 만드는 사람들의 ‘자기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책이 좀 더 잘 ‘발견’된다면, 독자들도 자연히 뒤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