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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정은주 사단법인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상담원, 웰다잉 강사 2019년 02월호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 어머니한테 죽음준비 서류를 쓰게 한 겁니까?” 필자가 상담 봉사를 하고 있는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으로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로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다는 얘길 들었다며 항의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지난해부터 「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임종기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법으로 보장받게 됐다. 그럼에도 부모의 죽음을 앞서 거론하는 것은 불효이며 젊은 사람에게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악담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죽음에 대한 인식이 낮은 차원에 머물러 있다. 4층을 ‘죽을 사(死)’와 소리가 같다는 이유로 F층이라 표기하기도 하고, 빨간색 펜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는 미신을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오랜 시민운동의 결실로 많은 이들이 죽음준비에 관심을 보이게 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러 오는 이들 중에는 부부가 같이 오거나 청장년층의 방문도 늘고 있다.
대안학교에서 중 · 고등학생들과 함께 웰다잉 수업을 한 적이 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수업은 청소년에게 죽음 성찰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30∼40대 학부모들에게 강의할 기회도 있었다. 강의 후, 삶의 중간 시점에서 죽음의 의미를 짚을 수 있어 뜻깊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제 한국사회도 웰다잉 논의가 본격화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웰다잉(Well-dying)’은 ‘웰빙(Well-being)’에 상응해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말이다. 육체적·정신적·영적으로 최대한 평온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고자 하는 사회적 요청이 빚어낸 표현이리라. 그러나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0년 『이코노미스트』에 발표된 ‘임종의 질’ 보고서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2015년 보고서에서 18위로 개선됐다고는 하나, 이는 의료시설 및 의료진의 질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 분석된다. 실질적 변화로 체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우리는 획기적 수명연장이라는 혜택을 누리게 됐지만 건강수명의 질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오랜 와병 상태에 따른 자율성 상실, 육체적 · 정신적 고통, 주변 사람들에게 줄 부담 등의 문제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웰다잉’은 어떤 위로와 희망을 전해줄 수 있을까? 웰다잉 시민운동에서 내건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연명의료에 의존해 임종시간만 연장되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나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미리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중환자실의 척박한 환경이 아닌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한 채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내 죽음은 남은 이에게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고령화와 핵가족 시대를 맞아 외로운 죽음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죽음 논의가 활발해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노후대책과 더불어 사후대책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나누자. 우리는 노년의 달라질 삶에 적응하기 위해 노화에 대해 준비하고 배운다. 죽음 공부 또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새로운 삶이란 나의 것이 아닌 남은 이의 것이 되겠지만, 이를 통해 생명의 순환과 영원성의 의미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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