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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도 죽음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해…시즌 3 기대하세요!”
‘젊은 나의 영정사진’ 프로젝트 2019년 02월호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늙은 사람처럼 보일 것을 알지만, 젊었을 땐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막연한 죽음보다 더 어둡고 두려운 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나의 미래, 꿈, 사랑 따위였기에. 그래서 나만은 예외인 것처럼 무수한 죽음들 옆을 지나쳐가며 ‘지금 여기’가 아닌 ‘내일 거기’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죽음을 응시하는 청춘들이 있다. 다른 청춘을 인터뷰하고, 그걸 토대로 영정사진과 영상을 찍고, 그 모든 이야기를 다양한 SNS로 공유한다. 그 덕에 나는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죽음과 그걸 통해 풍성해지는 삶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었다. ‘젊은 나의 영정사진’(이하 젊나영) 프로젝트에서 사진촬영, 인터뷰 기획, 영상촬영·편집을 맡은 이세인, 김하늘, 이하나 씨를 만났다.


청년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스튜디오는 많은데, 젊나영처럼 촬영 대상자를 인터뷰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곳은 없더라.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이세인   친구 이준형(총괄기획)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다. 2010년 이후에 세월호,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우리 사회에 사건·사고들이 많았는데 그런 ‘준비되지 않은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고 하더라. 대학 친구들끼리 의기투합해 팀을 꾸렸다. 개인적으로는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간 장례식장이 시한부로 투병하다 돌아가신 지도교수님의 장례식장이었는데, 그때 교수님의 영정사진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산에서 등산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웃으며 찍은 영정사진을 보니 ‘아, 저런 영정사진도 있을 수 있겠구나’, 그러면 청년들의 영정사진도 의미 있겠다 싶었다.
김하늘   한 친구가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을 곱씹다가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죽음을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계획하고, 또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어 함께하게 됐다.




프로젝트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이하나   2017년 시작해 2018년까지 시즌 1, 2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촬영 참가자들이 지인이었는데 시즌 2에서는 SNS를 통해 사연을 공개모집하고 촬영비도 받았다.
김하늘   본 촬영 전에 참가자를 만나 2~3시간씩 사전 인터뷰를 한다.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죽음과 영정사진,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걸 토대로 콘셉트를 정하고 영정사진, 영상 등을 촬영해 SNS로 공유한다.


죽음을 미리 생각해보는 활동들이 많은데 특별히 영정사진을 택한 이유가 있나?
김하늘   유서, 입관체험 같은 건 너무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영정사진을 선택했다. 사진은 더 부드러운 매개체라고 생각했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세인   촬영장소로 스튜디오는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이 원하는 장소도 각자 달랐고, 원하는 옷에 나만의 사연이 있는 장소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영정사진 아닌가. 그래서 사진 찍을 때마다 말했다. “당신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그걸 찍어주겠다.”


기억에 남는 촬영지나 참가자를 꼽는다면.
이하나   시즌 1 마지막 촬영지였던 인천 앞바다가 마치 신이 주신 선물 같았다. 마침 노을지기 전이었고 날씨도 너무 좋았고, 의미가 남달랐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너무 바빠 놀지도 못했던 때라 영정사진을 찍으러 간 게 아니라 친구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같이 여행을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세인   그때 바닷가를 함께 걸으며 사진을 찍는데 친구가 그러더라. “세인아, 나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대로 더 살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어”라고.


영정사진을 찍은 참가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김하늘   누군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됐다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하더라.
이세인   이제 준비됐으니까 당장 죽게 돼도 크게 허둥지둥하지는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SNS에 결과물을 공유한 뒤 사람들의 반응은?
이하나   우리 SNS를 찾아오는 분들은 주로 20대이고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데 어른들은 ‘젊은 애들이 헛짓한다, 관심 받으려고 이런 거 찍는다’는 반응도 있다. 좀 더 마음을 열고 봐주시면 좋을 텐데. 그래도 우리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비슷한 시기에 청년 영정사진 스튜디오들도 많이 생겼고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김하늘   시즌이 끝난 뒤에도 많은 위로가 됐다는 반응이 꾸준히 오고, 얼마 전 젊나영 프로젝트로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일면식도 없는 구독자가 찾아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계기로 죽음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을 것 같다.
김하늘   그렇다. “네게 죽음은 무엇이니?”라며 친구들에게 묻기도 많이 물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조심스러워졌다. 죽음을 바라보게 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이세인   내게 죽음이라는 건 굉장히 어둡고, 다 버리고 어디론가로 떠나버리고, 어떻게 보면 포기와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또 죽음 앞에서 지나온 삶 같은 건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하면서 준비된 죽음이 보내는 사람에게도, 가는 사람에게도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원할 때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니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가 삶을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이하나   사실 좋은 죽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고사든 자살이든 병사든. 죽음은 어찌됐든 이별이고 결핍이고 슬픈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신 죽음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삶을 잘 사는 것 자체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게 웰다잉이겠지.


영정사진을 찍는다면 어디에서 찍고 싶은가.
이하나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9살부터 살았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 거기서 찍고 싶다. 아파트 사이로 해가 뜨는 것이 보이고 강과 숲이 있고 한산하다. 늘 혼자 그 길로 집을 오가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웃긴 일도 많았다. 나한테 항상 솔직해질 수 있는 곳, 가장 나답고 행복한 곳이다.
이세인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자고 있는 모습을 찍으면 좋겠다. 가장 무방비 상태로 편하게 누워서. 사람들이 내 장례식장에 와서 사진을 보면 ‘세인이가 지금 저렇게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면 덜 슬플 것 같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김하늘   많은 사람들이 우리 프로젝트를 보고 자신의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힘들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남고 싶다.
이세인   ‘삶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듯 죽음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을 늘 마음에 새기면서 젊나영을 진행했다. 시즌 2는 끝났지만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정하는 프로젝트라 취직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시즌 3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땐 더 많은 사연을 다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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