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료화’ 현상으로 인해 인간의 죽음은 ‘심폐사와 뇌사’ 같은 의학적 죽음 이해만 고려하면 충분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도 죽음은 육신이란 낡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죽음은 육신의 죽음일 뿐이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소홀히 했다. 우리 사회 죽음의 질은 최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있다. 임종 직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도 부족하다. 행복한 죽음은 행복한 삶 이상으로 중요하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죽음과 삶을 가르치는 생명교육은 학교와 사회 교육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생명교육은 죽음 준비교육이고 또 삶의 준비교육이므로, 미국이나 독일에서는 학교와 사회 교육에 포함시켜 교육하고 있다. 아시아 죽음의 질 1위, 대만도 2005년부터 고등학생 때 한 학기 동안 매주 2시간씩 생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사회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생명교육을 학교와 사회 교육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2016년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언론에서 ‘웰다잉법’, ‘존엄사법’으로 이름하고 있지만,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다고 바로 웰다잉일 수는 없다. WHO에서 호스피스 돌봄은 신체적 · 사회심리적 · 영적 보살핌으로 분명히 규정했으므로 죽음 역시 뇌사나 심폐사처럼 판정의 육체적 기준만으로 충분할 수 없고, 의학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호스피스 전문가도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이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연명의료에 대한 법적 근거가 이뤄져서 많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법을 준비하면서 우리 사회는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의학적 · 법률적 논의에만 초점을 맞췄다. 인간의 죽음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 영적 돌봄은 아무 의미도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WHO 규정대로 죽음을 신체적 · 사회심리적 · 영적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웰다잉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웰다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①다른 무엇보다도 죽음을 잘 알아야 한다. 심폐사와 뇌사는 죽음판정의 의학적 기준일 뿐이므로, 죽음 이해의 일부에 불과하다. 육체가 죽는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죽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아름다운 마무리는 불가능할 수 있다. ②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죽음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사전의료의향서’, ‘사전장례의향서’를 미리 준비하고, 유서를 작성해 매년 연말연시에 읽어보고 수정한다. ③평소 죽음을 주제로 당사자와 가족 간의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죽음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자기가 원하는 임종방식을 가족에게 제시하고, 동의를 미리 받아두는 게 좋다. ④죽음이 자신에게 임박했을 때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앞의 3가지를 평소 준비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있을까? ⑤가족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당사자가 자신의 임종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곤란한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5가지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임종 맞는 사람이 가족에게 어떻게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매년 약 28만여명이 임종하는데, 아름다운 마무리는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