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나에게 ‘워라밸’이란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였다. 당시 지역 은행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입사원이다 보니 가장 바쁜 지점에 배치받았고 업무량은 엄청났다. 밤늦게 퇴근해 쓰러져 자고 바로 출근하는 삶의 반복이었다. 그 와중에 일도 삶도 멋지게 해내는 20대가 되고 싶어 친구들과 마라톤 동호회를 만들어 주말마다 마라톤을 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콘서트와 페스티벌 등도 찾아다녔지만, 평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 이마저도 삶에 활력을 주는 취미라기보단 스스로를 혹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다는 내 말에 몇몇 지인들은 안정적인 직장이니 노후를 생각해서 조금만 버티라고 했다. ‘노후를 생각하라니, 그럼 이렇게 30년을 버텨야만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다는 건가?’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숨 가쁜 인생의 속도를 조절해보고자 1년 전, 작지만 워라밸이 가능한 회사로 이직했다. 직원 수가 적어 아직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의 적용을 받진 않지만, 워낙 요즘의 사회 분위기가 퇴근 후 삶을 강조하고 존중하다 보니 아무도 회식이나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는 선배들은 가족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 자유롭게 유연근무제를 신청하곤 한다. 회사 차원에서는 운동이나 각종 취미 클래스 등 자기계발 비용을 지원해준다. 이전보다 늘어난 저녁 시간을 새로운 경험으로 알차게 채워보고자 출퇴근길에 눈여겨봤던 도자기 원데이클래스를 신청했다. 마카롱 만들기, 춤 배우기 등 다양한 원데이 클래스가 생겨나고 있는데 그중 도자기를 선택한 건 재료·용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인당 2~3만원으로 컵, 그릇 등의 실용적인 결과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맡은 홍보마케팅 업무의 특성상 회의가 많아 말을 많이 해야 하고, 온종일 소란스러운 사무실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 보니 원데이클래스를 받는 1시간 반 동안 적막하게 그저 조물조물 반죽을 만지는 게 묘한 안도감을 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주 1회 정규 클래스를 등록했다. 매주 수업을 거듭할수록 도자기 만들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건 실패해도 그만이다. 미리 준비해간 디자인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수업을 마치면, 하나의 도자기가 나오고 그것은 그것대로 각자의 매력이나 용도가 있다. 완벽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언가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해방감을 준다. 또 한 가지는, 모양이 갖춰진 도자기를 구워 내기 전 마지막으로 숨구멍을 내주는데 나는 이 점이 썩 마음에 든다. 마치 작은 도자기를 배려하는 행위 같기도 하고 내 삶에 숨구멍을 내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연히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안일하고 이기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라는 요지의 경제 칼럼을 읽었다. 하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 앞으로 짧게는 30년 운이 좋으면 40년까지 나는 ‘일’과 함께할 것이다. 적절한 균형과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그 시간을 가늘고 길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