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해!’ 2016년 와이낫미디어의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다. 원 테이크의 날 것 같은 10분짜리 영상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짝사랑 이야기도 특출나진 않았지만 독특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시간 맞춰 TV 드라마를 챙겨 보지 않는 1020세대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웹드라마 사상 최초 1억뷰 기록 등의 성과를 얻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생소했던 웹드라마는 일반화됐고 와이낫미디어는 시리즈 B(제품 및 서비스가 인정받은 후,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단계) 투자를 유치하고 주목받는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사가 됐다. 바야흐로 콘텐츠와 플랫폼 춘추전국시대, 어떤 콘텐츠가 살아남고 미디어산업은 어떻게 흘러갈지 와이낫미디어의 홍일한 이사에게 물었다.
페이스북 동영상 트렌드는 〈전지적 짝사랑 시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제작 계기가 궁금하다.
이민석 대표가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전통미디어) PD 출신인데 페이스북, 유튜브의 등장 이후 콘텐츠 트렌드 변화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OTT 환경에 최적화된 콘텐츠 형태를 찾기 위해 카이스트 출신으로 기술과 산업에 이해가 있는 임희준, 김현기 이사와 30초짜리 스토리텔링부터 다양한 옴니버스 콘텐츠 등을 실험했는데, 〈전지적 짝사랑 시점〉도 초기 실험 작품 중 하나였다. 당시 광고 영상이 주를 이뤘던 모바일 동영상 시장에서 10~15분의 스토리를 가진 숏폼(short-form) 콘텐츠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시즌 4를 제작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넘친다고 들었다.
감사하게도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여전히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웃음). 얼마 전 KB국민카드와 협업해 시즌 1의 히로인인 배우 김혜윤 양이 출연하는 특별편을 제작했다. 앞부분은 훈남 카페 알바생을 짝사랑하는 스토리가 전개되고, 뒷부분은 쿠키 형식의 KB국민카드 광고가 나오는데 광고 콘텐츠임에도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와이낫미디어 콘텐츠는 어디서 볼 수 있나.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드라마 채널 ‘KOK TV’와 예능 채널 ‘KIK TV’ 페이지를 자체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네이버 Vlive’, ‘올레 TV 모바일’, ‘웨이브’ 등 플랫폼에 주로 유통하고 있다.
모든 영상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데, 수익모델이 궁금하다.
유통과 광고 수익이 6 대 4 비율로 구성된다. 광고 매출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콘텐츠 선공개권 등 유통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매체가 늘어나는 만큼 그 안을 채울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사업팀을 본격적으로 세팅하고 해외 유통에도 뛰어들었는데 중국,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좋은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메가트렌드를 잡을 콘텐츠 형식에 관한 수요가 높고, 콘텐츠 강국인 한국의 미디어기업이기 때문에 많이 찾는 것 같다.
〈일진에게 찍혔을 때〉, 〈리얼하이로맨스〉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감’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있다. 분명 화려한 CG로 눈을 사로잡는 거대 자본의 킬러콘텐츠도 필요하지만, 채널이 늘어난 만큼 시청자들의 소소한 공감을 끌어낼 콘텐츠가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OTT 콘텐츠는 대부분 분량이 길지 않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소재를 다뤄야 한다. 최근 선보인 〈일진에게 찍혔을 때〉 같은 경우도 언뜻 보면 10대를 타깃팅한 듯 보이지만 누구나 경험했던 ‘학창 시절’이라는 배경 덕분에 10~40대까지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CJ ENM 등에서 근무했는데, 기존 콘텐츠와 OTT 기반 콘텐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제작 환경의 차이가 크다. TV 드라마를 제작할 때는 ‘선생님 작가(메인 작가)’가 매우 중요하다. 경력 있는 작가를 섭외하는 것이 좋은 연출, 스태프, 편성시간, 더 나아가 인지도 있는 배우를 섭외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사실 신인 작가가 바로 데뷔하기 힘들다. 반면에 OTT 기반 콘텐츠는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작가와 PD 누구나 콘텐츠 제작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전지적 짝사랑 시점〉의 이나은 작가도 데뷔 당시 24살이었다.
후속 기획이나 마케팅의 속도감도 다를 것 같다.
맞다. TV 콘텐츠의 경우 하나의 시리즈가 히트했을 때 후속 기획을 선보이는 데 최소 1~2년이 걸린다. 하지만 OTT 콘텐츠의 경우 좋은 반응이 나오면 같은 지식재산권(IP)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후속 기획이나 광고 등 부가 콘텐츠를 내부에서 빠르게 준비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레거시 미디어와 협업 계획이 있는지?
지난해 김향기 배우 주연의 〈#좋맛탱〉을 tvN에서 크리스마스 편성으로 선보였는데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 올해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방송사와 협업을 논의 중이다.
콘텐츠 공급자의 입장에서 토종 OTT ‘웨이브’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에 대항할 만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사실 넷플릭스와 웨이브는 주력 콘텐츠와 타깃이 다르다. 〈킹덤〉과 같은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가 있긴 하지만 넷플릭스는 주로 영미문화권 콘텐츠를 다룬다. 작품성은 있지만, 문화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고 자막을 시청해야 하므로 일정 시간의 몰입을 요구한다. 웨이브는 지상파 콘텐츠와 양질의 국내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는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익숙하고 멀티태스킹도 가능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현재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는 약 180만명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인 힙(hip)한 서비스인 건 맞지만, ‘시장을 삼켰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웨이브는 SK텔레콤과 제휴해 요금제 묶음(bundle) 판매전략을 펼치고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이 그랬던 것처럼 이용자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미디어산업의 전망과 와이낫미디어의 생존전략이 궁금하다.
당분간 합종연횡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강자가 등장하고 이에 대응하는 연합이 생길 것이다. 그 틈에서 새로운 플랫폼과 콘텐츠 형식이 등장할 거다. 현재 여러 기업이 자회사 형태로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있는데, 그들은 든든한 유통 채널이 있지만 타 채널과의 협업은 자유롭지 못하다. 와이낫미디어는 ‘독립 부대’라는 장점을 활용해 트렌드를 빠르게 쫓고, 어느 채널에서건 필요로 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것이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많은 사업자가 생겨나는 만큼 많은 실패가 발생할 것이다. 실패한 사람들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펀드, 국가사업 참여 기회 제공 등의 지원과 보호 수단을 마련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