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물건을 소유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만큼 돈을 냈다면, 이제는 돈을 먼저 낸 다음에 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매달 또는 일정 기간마다 돈을 먼저 지불한 다음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유통 형태인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 얘기다. 신문이나 우유 배달을 생각하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영양제, 커피, 자동차 등 크고 작은 소비재부터 영화 관람, 건강 검진 등 무형의 서비스까지 구독 대상이 무궁무진해졌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구독경제 시장 규모가 2020년 59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구독경제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된 계기는 미국의 콘텐츠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Netflix)’다. 원래 DVD를 대여해주던 넷플릭스가 월정액을 받고 영화와 TV 콘텐츠를 무제한 제공하는 사업모델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에 디즈니나 HBO 등 전통 미디어기업들도 앞다퉈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업계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이처럼 넷플릭스형 구독모델은 무형의 콘텐츠를 무제한 제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2012년 창업한 ‘펠로톤(Peloton)’은 실내 자전거와 러닝머신에 운동 콘텐츠를 결합했다. 월 39달러를 내면 운동기구에 부착된 태블릿PC로 수천 개에 달하는 운동수업 영상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형 모델을 중심으로 구독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교보문고의 ‘교보SAM’, 리디북스의 ‘리디셀렉트’, ‘밀리의 서재’ 등 전자책 구독 서비스가 가장 대표적이다.
정기배송형 구독모델은 다양한 상품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매일 사용하며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2011년 설립된 ‘달러 쉐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은 최소 1달러만 내면 매달 면도날 4~5개를 배송해준다. 9년 차 스타트업이지만 120여년 역사의 면도기 업계 1위 기업 질레트(Gillette)를 온라인 매출에서 앞서고 있다. ‘큅(Quip)’은 월 5달러를 내면 3개월마다 전동칫솔모를 정기적으로 보내준다. 소비자들이 깐깐하게 고르는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가입하면 좀처럼 업체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가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대여형 구독모델도 있다. 2012년 설립된 ‘르 토트(Le Tote)’는 월 49~119달러를 내면 박스에 옷과 액세서리를 담아 보낸다. 한 달 동안 입고 돌려주면 된다. 현재 르 토트의 기업가치는 1억8천만달러(약 2,150억원)로 얼마 전 200년 역사의 미국 백화점 체인을 인수할 만큼 눈에 띄게 성장했다. ‘페더(Feather)’는 월 35~200달러를 내면 소파, 탁자 등의 가구를 일정 기간 동안 빌려준다. 벤츠나 BMW 등 고급차 브랜드들도 월정액으로 마음에 드는 차를 골라 타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가 지난 1월부터 월 72만원에 ‘현대 셀렉션’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매년 수십, 수백 개의 스타트업들이 ‘제2, 제3의 넷플릭스’를 표방하며 등장하고 있다. 해외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인공지능(AI)·클라우드와 배송망 발전에 힘입어 구독경제가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미디어업계는 넷플릭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구독경제가 휩쓸고 간 자리는 과연 어떻게 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