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는 봄/여름 남성 런웨이 쇼에서 ‘이케아(IKEA)’ 장바구니를 꼭 빼닮은 가방을 출시했다. 패션에 문외한인 필자의 눈으로는 단돈 천원짜리 장바구니와 285만원짜리 가방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은 해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17년 전 자신들의 디자인을 무단도용한 제품으로 유명세를 떨친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Supreme)’과 정식으로 컬래버레이션을 하게 된다. 게다가 현재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인 버질 아블로는 오랫동안 스트리트 패션을 대표해온 디자이너다. 또한 이탈리아 브랜드 ‘디젤(DIESEL)’은 자사의 짝퉁 브랜드 ‘다이젤(DEISEL)’의 로고를 직접 새긴 제품을 내놓으면서 진품과 가품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참신한 시도를 보여줬다.
이러한 현상은 유행과 변화에 민감한 패션업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진짜 현실을 경험하며, 아날로그의 외피를 쓴 디지털 제품에 환호한다. 타인과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SNS의 게시물은 대부분 어느 정도 행복하게, 멋지게, 예쁘게 연출된 것이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진짜와 가짜가 전복되는 현상이 우리 일상생활에도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진짜를 압도할 만큼 멋진 가짜 상품이나 그런 상품을 소비하는 추세를 뜻하는 용어가 ‘아주 멋진 가짜’라는 의미의 ‘클래시 페이크(classy fake)’다. 여기서 포인트는 ‘가짜’가 아니라 ‘멋진’에 찍혀 있다. 소비자들은 가짜와 짝퉁, 모조품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만큼이나 멋지고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가짜’에 열광한다.
클래시 페이크가 등장하는 배경에는 달라진 소비자의 성향이 있다. 아주 ‘합리적’인 소비성향을 보이는 요즘의 소비자들은 경제적·시간적 여유 안에서 스스로의 개성과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제품을 찾는다. 더욱이 개인의 취향이 어느 때보다 존중받는 ‘개·취·존’ 시대다. 자신의 취향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 자체로 의미와 차별성을 지닌 제품이라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가짜를 소비하는 ‘페이크슈머(fakesumer)’가 되는 것이다.
다시 패션업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렇지 않아도 명품 브랜드의 희소성은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의 2016년 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의 74.6%는 명품이 더 이상 희소한 제품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으며, 절반 이상은 아무리 명품이어도 남들이 다 가진 제품은 갖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클래시 페이크가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환경보호와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콩으로 만든 고기와 식물성 계란, 인조 모피(페이크 퍼), 가짜 플라스틱(바이오플라스틱)이 인기를 모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제품들은 인간의 탐욕으로 발생한 지구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대안으로도 평가받는다. 이왕이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소비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요즘 소비자들에게는 이러한 ‘가짜’를 소비하는 것이 진짜를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윤리적이고 착한 소비활동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단순히 진짜의 외형만을 흉내내는 ‘짝퉁’은 외면받겠지만 진짜보다 중요한 혁신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클래시 페이크 제품은 충분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가치 있는 가짜에 환호할 준비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