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나는 생애 첫 덕질을 시작했다. 당시 방탄소년단이라는 7인조 아이돌그룹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자 단순 호기심에 보게 된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평소 가요에 무관심했던 나를 아미(ARMY; 방탄소년단 팬덤명)의 세계로 이끌었다. 뮤직비디오를 보며 막 알아가던 그때는 몰랐다. 이 7명의 청년들에게 마음뿐 아니라 지갑도 뺏기게 되리라는 것을.
덕질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내 소비 철학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우선 음반이다. 앨범이 정식 발매되기 약 한 달 전 예약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온라인 음반 사이트에 들어가 결제한다. 물론 앨범이 나온 후 음악이 어떤지 파악한 다음 사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진정한 팬이기에 미리 돈을 지불한 후 앨범이 배송될 때까지 경건한 자세로 기다린다. 그 다음은 각종 디지털 콘텐츠다. 콘서트 생중계 시청권, 자체 예능과 다큐가 담긴 DVD 등 일 년 내내 콘텐츠가 끝없이 나오고, 그때마다 아낌없이 지출한다.
모든 소비의 기준은 팬심이 됐고, ‘마침 필요했다’는 핑계로 구매를 정당화했다. 마침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데, 방탄소년단의 얼굴이 포장에 그려진 커피가 마트에 진열돼 있어! 마침 휴대폰을 바꾸려던 참인데, 새로 출시된 스마트폰의 모델이 방탄소년단이래! 마침 분홍색 후드티가 정말 필요했는데, 내 최애가 입고 나왔네! 이미 자가용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수천만원을 들여 SUV도 새로 구입할 뻔했다.
방탄소년단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은 덕질에 재미를 더해준다. 한 은행에서는 지난해 방탄소년단과 협업한 적금상품을 출시했다. 그룹 결성일, 멤버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 입금한 금액에 대해서는 우대이율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직접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한 브랜드 BT21도 인기다. 사무실 책상과 집은 귀여운 BT21 캐릭터가 들어간 문구용품과 생활용품으로 가득하다.
이런 소비를 하는 데 단순히 내 스타에 대한 애정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뿌듯함이 있고, 주변에 알려 더 많은 팬을 만들고 싶다는 책임감도 있다. 상상 이상으로 헌신적인 오늘날의 팬들을 보면, 다 비슷한 마음인 것 같다.
「트렌드 코리아 2020」은 내년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팬슈머(fansumer)를 꼽았다. “한 대상에 일방적으로 애정을 쏟고 구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획하고 투자하고 견제하는 상호작용에 방점을 두는, 매우 적극적인 팬으로서의 소비자”를 의미한다. 요즘 아이돌 팬덤을 보면 팬슈머로 진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앨범을 사고 콘서트에 가는 것으로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다면, 지금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스타에 대해 잘못된 기사가 나오거나 부당한 대우가 감지되면 팬들이 즉시 언론사나 소속사 등에 대응을 요구하는 게 한 예다. 또 지하철·버스 광고, 카페 컵홀더 이벤트 등으로 스케일 크게 애정을 드러내는가 하면, 멤버의 이름으로 기부 캠페인을 벌이며 그룹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전파하려고 노력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덕질도 소비도 결국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내년에도 열심히 음악을 듣고 제품을 사며 내 최애와 함께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