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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120여명이 손 보탰죠…가을바람 불면 마을에서 영화 한 편 어때요?”
이선경 예술플랫폼 꿈지락 협동조합 대표 2020년 02월호


새뜸마을, 해들마을, 범지기마을…. 신도시로 이주해 아파트마다 붙은 ‘마을’이라는 이름을 볼 때면 의아했다.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 생활에서 마을의 정서에 어울리는 건 찾아볼 수 없었기에. ‘어쩐지 쓸쓸한 생활이군’ 하며 회사와 집을 오가다 만난 책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에는 도시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꽃을 같이 심는 친구’며 ‘강렬한 관계’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마을생활에 대한 부러움이 어떤 열망으로 바뀌려 할 때 이끌린 기사 한 조각.
어느 마을에서 마을영화제를 열었는데, 마을사람들이 내놓은 빨간색 헌 옷 등을 오며가며 바느질해 레드카펫으로 깔고 손수 만든 굿즈를 팔았단다. 주민 120여명이 자발적으로 영화제를 도왔고 관련 마을단체만 40여개였다고. 영화 상영에만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워크숍까지 해서 직접 찍은 영상도 틀었다고 했다. 가을바람 부는 야외에서 만끽한 영화제가 ‘꿈결’ 같았다는데.
‘아니 무슨 마을에 단체가 40개나 돼?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하는 호기심에 마을네트워크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급기야 아파트 시세를 검색해보기까지! 사심을 안고 만나본 이선경 예술플랫폼 꿈지락 협동조합(이하 꿈지락) 대표는 바로 그 영화제, ‘머내마을영화제’를 이끈 총괄프로듀서이자 그 영화제가 태동할 수 있었던 끈끈한 마을, 용인시 수지구 ‘동천마을’의 주민이다.


영화 보는 모임에서 무려 영화제 아이디어가 나왔다던데.
이렇게 커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마을에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영화나 보자 해서 모인 게 시작이었다. 주민센터에 마을극장(머내극장)을 열어 한 달에 한 번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영화감독인 한 멤버가 “소소하게 영화제도 가능하다”고 하더라. 그 말에 꿈을 갖게 됐다.

그래서 어떤 영화제인가.
9월 초순 느티나무도서관, 숲속도서관, 이우학교, 동천동주민센터 등 마을 곳곳에서 열리는 ‘머내마을영화제’다. ‘머내’는 이곳의 옛 지명이다. 영화 선정에서부터 진행, 부대행사, 개막공연 등 전 과정을 주민 손으로 한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다.
마을 무비큐레이터들이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영화, 좋은 영화인데 인지도가 낮은 영화들을 위주로 고른다. 지난해 2회 영화제에서는 개막작 〈배심원들〉을 비롯해 〈나, 다니엘 블레이크〉, 〈마이크롭 앤 가솔린〉, 〈프란시스 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등 16편을 상영했다.

영화 외적인 콘텐츠로도 각광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영화제에는 레드카펫이 있어야 된다기에 돈도 없고 하니 일단 직접 만들어보자 해서 빨간색 헌 옷을 모았다. 그걸 주민들이 일일이 이어 붙여 바느질했다. 사람들이 영화제에 와서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부터 보더라. 직접 만든 거니까. 2회 때는 개막공연에 유명한 팀을 부른 게 아니라 마을의 여러 동아리들이 참가해 연극, 춤, 노래 등이 어우러진 시네마 퍼포먼스를 펼쳤다. 모두 아마추어들이지만 용기를 냈다. 마을주민인 연극 연출가의 도움도 있었고.

100% 주민들끼리 만든 영화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냥 와서 보기만 하면 제3자지만 포스터 하나라도 붙이면 ‘내가 만든 영화제’가 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끔 했다. 자원봉사자까지 120여명이 참여했다. 대단히 든든한 인원이지만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적합한 역할을 드리는 게 고민스럽긴 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어렵진 않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태풍이다. 우린 야외 영화제인데!(웃음) 2회 영화제 개막제 때 태풍이 관통한다고 해서 실내에서 진행하는 플랜 B까지 준비했다. 결국 잘 치르긴 했지만 아마추어임에도 아마추어가 아닌 듯 중심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감사하게도 용인문화재단의 우리동네예술프로젝트라는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았다. 그렇다고 예산이 충분한 건 아니어서 타이트하게 진행했다. 끝나고 보니 지원액의 4배 정도 되는 규모로 치렀더라. 부족한 건 사람으로 메웠다. 이제 3년 차 공모를 준비하려 한다. 진짜 마을사람들이 같이 만들어나가는 나름 독특한 영화제이니만큼 시에서도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안 되더라도 우리 색채를 살리며 한 사람 한 사람씩 마음을 모아 하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제 하면서 이것만큼은 꼭 이루고 싶다, 했던 게 있다면.
돈을 벌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게 기본 철학이다. 회의할 때 주로 했던 말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마음 낼 수 있는 것만 합시다”였다. 모두가 그걸 지켜준 덕에 일이 커지면서도 큰 갈등이나 잡음이 없었다.

직접 영상도 만들었다던데.
주민들이 만든 것도 상영해보자 해서 큰 기대는 않고 ‘1분 영상’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참여자들이 많았다. 영화제 전에 미리 영상 제작에 대한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영해보니 영화보다 훨씬 더 호응이 뜨겁더라. 영상에 나오는 사람이 아는 주민이다 보니 조금만 뭘 해도 웃고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런 공감의 반응이 생각보다 컸고 그게 마을영화제만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예상 외로 동천마을이 아파트촌이더라. 그런데도 이런 ‘마을스러운’ 곳이 됐다니 놀랍다.
우리 마을의 이우학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다.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은 대개 ‘더불어 사는 삶’에 지향점을 둔다. 나 역시 그랬지만 누군가 “이거 같이 해볼래?” 하면 모여서 함께한다. 마을 대부분의 강좌, 동아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다 세월호를 계기로 학부모뿐 아니라 마을 차원에서 세월호를 알리고 뭐라도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렇게 마을의 단체와 개인들이 모인 ‘동천마을 네트워크’가 생겼고 마을축제 등 각종 마을행사를 함께하고 있다.

꿈지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사실 놀려고 만들었다(웃음). 직장을 그만두고 놀아야지 했을 때 이곳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이우학교에 다녔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었다. 어느새 마을에서 춤, 영화 등 동아리를 5개나 만들고 있더라. 혼자 노는 게 아니라 함께 놀다 보면 사람들의 예술적 감성을 더 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모임을 만들었고 꿈지락으로 발전했다.

동천마을이 달랐던 건 뭐였나.
마트에 가도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것?(웃음)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공원을 산책하다가도 친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일상에서 불현듯 이웃을 만나는 즐거움이 가장 좋았다. 든든한 지지자들이 마을에, 가까이에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올해 계획이 궁금하다.
꿈지락은 올해 4년 차인데, 문화예술 관련 행사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인 만큼 ‘예술적 리더십’을 조금 더 키워볼 생각이다. 사람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더 확산시키려면 우리 정체성이 더 분명해야 할 것 같아서다. 머내마을영화제는 공연 등 행사보다는 ‘영화’에 방점을 두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혹시 감독 아녜스 바르다를 아나? 88세의 나이에 로드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만든 분인데 그녀처럼 살고 싶다.
양은주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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