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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이후의 K-팝, 지금은 ‘실험 중’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2020년 04월호


한국 대중음악의 지향점은 늘 영미권 대중음악이었다. 변방의 음악계는 영미권의 조류를 수입해 재현하는 입장인바, ‘본토’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서 이를 ‘따라잡아야’ 하는 처지였다. 현재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K-팝이라는 현상은 이와 같은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K-팝은 본격적으로 미국시장을 바라기 시작했다. 2009년 보아의 영어 앨범과 같은 시기 원더걸스의 미국 투어는 이전 시대 일본이 수립한 미국진출 전략 가설을 공유하고 있었다. ‘본토’에 주눅 들지 않을 충분한 실력과 프로덕션을 바탕으로 미국문화의 근간에 녹아든 일원임을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보아의 ‘Eat You Up’이 보여주는 미국 게토의 풍경, 원더걸스의 ‘Nobody’에서 패러디되는 1960년대 슈프림스(Supremes)의 모습이 이 방식을 잘 보여준다. 서구인이 매력을 느낀다는 통념의 연장에서 동양인 여성이 전면에 나서는 것, 현지 출신 또는 현지어에 능통한 멤버를 포함한 기획, 영어 버전 음원 수록 등도 역시 이 시기의 대표적 전략으로 꼽힌다.
이러한 전략이 변화의 전기를 맞은 것은 2017년이다. 방탄소년단(BTS)은 전원이 국내 출신인 남성 그룹이고, 가사와 콘텐츠 이해에 언어 장벽이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내용적인 공감을 주된 소구점으로 한 것이 새로운 특징이었다. 이는 사실 낯설고 충격적인 이미지의 박찬욱, 김기덕의 시대에서 공감의 <기생충> 시대로의 전이처럼 북미시장에서 아시아 콘텐츠가 소비되는 방식의 변화와도 관련된다. 어떤 면에서든 BTS는 기존의 통념적 전략을 거의 모두 파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2010년대 전반에 걸친 게릴라식 성공담은 대체로 보이그룹이었다. 이는 K-팝 팬덤 확산에 크게 기여한 집단이 특별히 동양 ‘여성’에 집중하지 않는 이민자 및 성소수자 그룹인 것과 연관된다. 또한 본격적으로 해외 팬들과 접촉하는 단계에서 보이그룹이 걸그룹보다 팬덤 중심, 콘서트 중심의 활동을 해온 점 또한 작용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BTS 이전부터, 특히 북미시장에 관해서는 실제 유효한 것으로 검증되는 바와 통념에 일정 부분 거리가 있었으며, BTS를 기점으로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 K-팝은 다각도의 전략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슈퍼엠은 가요계에서도 특수한 스타일로 인식되는 통칭 ‘SMP(SM Music Performance)’를 극단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최대한 낯선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블랙핑크, 몬스타엑스는 강렬한 사운드와 군무를 기반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팝송에 주력하며 약진하고 있고, 이달의 소녀, 드림캐쳐 등은 신곡이 발표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돼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감각으로 즐길 수 있는 서사성을 바탕으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외에도 라틴 문화권에 친숙함으로 다가서는 카드, 아랍어권 커버송 등을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비아이지 등 특수한 사례도 눈에 띈다. BTS의 전략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과거의 전략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지금껏 통념에 가려 시도되지 못한 새로운 전략을 찾아내고자 하는 시기로 해석된다.
지금껏 K-팝은 다양한 정서와 장르를 급격하게 이어 붙인 독특한 악곡 구조나 완벽하고 화려하게 연출된 시각 요소, 군무 등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또한 하나의 무대가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시키거나 서로 다른 곡들이 연속성을 갖는 서사성 역시 강점의 하나로 꼽힌다. 이런 특징들은 영미권 전통의 시각에서 낯설고 새로운 존재로 K-팝을 인식하고 그 가능성에 주목하게 했다. 그러나 아시아권 한류를 통해 이룬 양적 성장이 콘텐츠 자체의 밀도와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기에 세계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울 수 있게 됐음은 분명하다. 해외진출 전략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지금, 어떤 전략이 최종적인 정답일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K-팝 특유의 매력을 유지하는 참신하고 수준 높은 기획이 성공의 전제라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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