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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유연근무제…노동시장 풍경이 바뀌고 있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차장대우 2020년 07월호


유연근무. 장소와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해 일하는 근무형태를 말한다. 정부는 생산성 향상과 삶의 질 제고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이유로 2009년부터 민간 및 공공 부문에 유연근무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일정한 시간에 일터에 나가고 해가 지면 귀가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 이전부터 인류에 각인된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세계를 휩쓴 지 반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처럼 익숙한 일의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2000년대 초반 이후 기술적으로 가능했던 화상회의와 재택근무 등이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콜센터 업무를 재택근무 방식으로 전환한 신한은행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업무방식만 놓고 보면 콜센터는 처음부터 재택근무가 가능했다. 녹취되는 상담 내용 등을 통해 근태관리도 비교적 쉽게 이뤄질 수 있다. 문제는 콜센터 직원들이 취급하는 고객 데이터인데, 금융사들은 일찍부터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내놨다. 직원 집과 회사를 연결하는 별도의 보안 인터넷망과 이동저장장치(USB) 등의 사용이 불가능한 전용 단말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감독당국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문제를 들어 콜센터 재택근무 허용을 미뤄왔다. 그러다가 3월에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신한은행과 삼성생명의 콜센터 재택근무를 허용했다. 감염병 유행이 규제혁신을 이뤄낸 역설적인 사례다.
유연근무를 경험한 근로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3월 말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74%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유연근무제 확대는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 등 노동시간을 중심으로 한 규제가 힘을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회사 밖에서 개인 사정에 맞춰 자유롭게 업무를 하는 만큼 근로시간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기가 어려워져서다.
유연근무제를 경험한 기업이 늘면서 외주를 주는 업무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회사 밖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업무 효율을 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외주 범위가 마케팅과 인사, 총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재택근무 등의 활성화는 집과 직장의 개념부터 바꿔놓을 전망이다. 직장에서는 개인 책상이 사라지며 사무실과 집기가 간소화되고 대신 집은 업무까지 고려한 형태로 변화한다. 아파트에는 천장을 높이는 공간 설계가 도입될 전망이다. 조앤 마이어스 레비 미국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교수팀은 높은 천장 아래서 문제를 푼 사람들이 낮은 천장에서 문제를 푼 사람들보다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현재 2.4m 수준인 천장고를 3.0m 수준으로 높인 특화 공간을 갖춘 주택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집에서 장시간 머물기 위해 실내 공기질을 개선하는 시설에 대한 요구가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한 양을 평가하는 것과 급여 지급 기준도 시간이 아니라 성과를 중심으로 바뀔 전망이다. 유연근무 시 회사와 직원 사이의 업무 소통 과정에서 회사 측 요구사항과 직원의 업무 실행 내역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급여를 책정하는 호봉제는 몇 년 안에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 같은 변화 과정에서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큰 힘을 얻지는 못할 전망이다.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노동시장 및 관련 시스템에 새로운 질서가 부여되고 있어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정부가 방역업체와 마스크 제조업체 등을 특별연장근로 업종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양대 노총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큰 이목을 끌지 못한 것이 단적인 예다. 1998년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파견 및 구조조정 관련 법안 입법에 노동계가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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