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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 총동원에 생산시설도 선확충···코로나19 백신 속도전
김연희 시사IN 기자 2020년 09월호



지난 2월 코로나19 백신 취재를 시작할 당시 전문가들의 의견은 반신반의에 가까웠다. 백신 개발은 완료까지 통상 10년을 내다본다. 실험실에서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하더라도 동물시험(전임상)과 사람 대상 시험인 임상 1상·2상·3상이라는 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지금까지 최단기간에 개발된 볼거리 백신도 4년이 걸렸다. 2002년 사스와 2015년 메르스 때도 연구진과 일부 제약사들이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백신이 완성되기 전 대유행이 먼저 끝났다. 코로나19 백신 역시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팬데믹을 종식시키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었던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를 떠올려보면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다. 앞선 경험을 통해 팬데믹 백신은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가장 신속하게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착수했던 미국의 모더나(Moderna)와 이노비오(Inovio)는 감염병 백신시장에서 벤처기업이다.

167개 백신 개발 쾌속 질주 중
그로부터 6개월,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낙관적이었던 전문가들의 예상조차 뛰어넘을 만큼 쾌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노피(Sanofi), 미국의 화이자(Pfizer)와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등 빅파마들도 뒷짐을 풀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선두그룹 개발팀이 예고한 일정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개발 완료는 이제 코앞에 와 있다. 목표대로라면 올해 안에 긴급사용도 가능하다. (물론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갔을 경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주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개발 현황을 정리해 발표한다. 8월 13일 기준, 임상 3상에 들어간 백신 후보는 7개다. 개발선상에 있는 코로나19 백신 수는 167개다.
미국, 영국, 중국, 독일(미국과 합작) 제약사가 최초의 코로나19 백신 타이틀을 향해 개발에 속도를 냈다. 그러던 와중에 첫 번째 백신 개발 소식이 다소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8월 11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백신 개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보건당국이 러시아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를 승인한 것이다. 러시아는 코로나19 백신 레이스에서 뒤처지진 않았지만 최선두 주자는 아니었다. 이번 깜짝 발표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미흡한 검증이 있었다. 임상 2상까지 단 70여 명만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테스트한 뒤 백신을 출시한 것이다.
임상 3상은 백신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임상 3상에선 최소 1천 명부터 수만 명까지 지원자를 모집한 뒤 두 그룹으로 나누어 백신의 성능을 본다. 각각 진짜 백신과 가짜 약(플라시보)을 투여하고 수개월에 걸쳐 이들을 추적 관찰해 두 그룹의 코로나19 감염률 차이를 비교한다. 백신 투여 그룹의 확진자가 대조군보다 현격하게 적으면 비로소 백신의 효능이 확인된다. 즉 임상 3상을 하지 않은 ‘스푸트니크V’는 아직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백신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9월 초부터 의료진과 교사 등에게 백신을 우선 접종하고 10월부터 일반인까지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러시아 국영 통신사 타스는 베트남이 이 백신을 5천만 회에서 1억5천만 회 접종분만큼 구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곧 임상 3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검증이 끝나지 않은 백신을 사용하려 하는 국가는 러시아만이 아니다.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중국에서도 특정 그룹을 상대로 비슷한 시도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차이나(PetroChina)가 해외에 나가는 직원 중 지원자에게 백신을 접종한다고 보도했다. 국영 제약사인 시노팜(Sinopharm)이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임상 3상 중)이 그 대상이다. 캔시노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와 군사의학과학원이 같이 만드는 코로나19 백신(임상 3상 착수)은 ‘특수한 목적’에 한해 군대 내에서 접종이 가능하도록 1년간 허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효능과 안전성이 의심스러운 백신이 보급됨으로써 백신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제대로 된 백신이 출시된 뒤에도 백신 접종을 꺼리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코로나19 백신 레이스에서 가장 앞서가는 업체는 영국·스웨덴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다.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와 공동으로 침팬지 아데노 바이러스를 벡터로 삼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6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임상 3상에 들어갔고 브라질에서 2천 명을 대상으로 시험을 진행 중이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임상 3상이 예정돼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9월까지 임상을 마무리하고 10월부터는 긴급사용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백신 개발이 완료되고 보건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고 해도 곧바로 접종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백신 생산설비를 마련하는 데 또 시간이 걸린다. 짧으면 2개월에서 길면 1년이 넘어가기도 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제조설비 확충에 나서고 있다. 다른 제약사들과 제휴를 맺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백신 개발 순서에 따르면 모든 테스트가 끝나고 정부의 승인을 받은 이후에야 생산시설을 준비하기 마련이지만, 비상상황을 맞아 ‘선착공-후승인’이라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위탁 생산 계약을 맺은 제약사들은 인도,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중국 등 세계 곳곳에 위치해 있다. 국내 백신 업체인 SK바이오사이언스도 이 가운데 하나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1회 접종분 가격을 비교적 낮은 수준인 4달러로 책정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관심을 모으는 또 다른 기업은 미국의 모더나다. 모더나는 RNA 백신 형태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고 있다.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이용하는 RNA 백신과 DNA 백신은 전통적인 백신보다 빠르게 백신 후보물질을 만들 수 있어 코로나19 같은 긴급한 보건위기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모더나와 DNA 백신을 개발하는 이노비오가 재빠르게 임상 1상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이 덕분이다.
기대감을 반영하듯 모더나의 주가는 여러 번 출렁였다. 지난 5월 19일, 하루 사이 약 20%가 올랐던 주가가 다음 날 16% 급락했던 건 이미 유명하다. 온전하지 않은 임상 1상 데이터를 발표했다가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자 벌어진 일이다. 모더나는 지난 7월 임상 3상을 시작했다. 모더나가 개발 중인 RNA 백신 1회분 가격은 15달러다. 이 백신은 28일 간격을 두고 2회 접종해야 한다.

백신 사전 확보 경쟁도 치열···미국 이미 15억 회 이상 접종분 확보
개발만큼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주요 국가들은 제약사와 발 빠르게 계약을 맺으며 아직 완성되기 전인 백신 확보에 나서고 있다. 7월까지 미국이 15억 회 이상, 유럽연합 7~9억 회, 중국 5억 회, 영국은 2억5천만 회, 일본이 2억2천만 회의 접종분을 확보했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초고속 작전(Warp Speed Operation)’이라는 이름으로 자국과 해외를 가리지 않고 유망한 제약사들의 백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2021년 1월까지 안전성과 효능을 갖춘 백신 3억 회 접종분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 존슨앤드존슨,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노바백스(Novavax), 화이자, 사노피가 초고속 작전으로 지원을 받고 미국 정부와 공급 계약을 맺었다.
가장 먼저 개발되는 백신이 가장 우수한 백신은 아니다. 한 전문가는 선두그룹에 있는 코로나19 백신의 임상 결과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백신에 기대하는 수준보다 효능이 낮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를 의식해서인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시험 중인 백신이 감염을 저지하는 효능이 가짜 약에 비해 50% 이상 높다면 코로나19 백신으로 승인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반적인 백신 승인 기준(70%)에 비춰볼 때 상용화의 문턱을 낮췄다. 앞다퉈 확보한 백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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