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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과 접종에 필요한 안전수칙 준수가 성패 갈랐다
이병철 동아사이언스 기자 2020년 09월호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소식으로는 백신 상용화가 머지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취재 현장에서 만난 연구자 대다수는 조급한 개발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왜 이토록 신중한 태도를 보일까.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백신 개발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78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최초의 현대적 백신인 우두법을 발표한 이후, 수많은 백신이 탄생해 그간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감염병을 예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비극적인 실패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소아마비 백신이다. 소아마비의 원인이 바이러스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1930년대에 미국 의학자 모리스 브로디(Maurice Brodie)와 존 콜머(John Kolmer)가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각각 사백신과 생백신을 만들어 경쟁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개발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원숭이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별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자 바로 사람에게 접종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실험 결과는 참혹했다. 소아마비를 예방할 백신이 오히려 소아마비를 불러온 것이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맞지 않은 사람들과 유사한 수준으로 소아마비에 걸렸고, 백신 접종 후 거주 지역에서 유일하게 소아마비에 걸리기도 하는 등 백신에 의한 감염이 의심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실험 결과가 발표된 후 과학계는 실험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백신이 개발됐고 소아마비는 점점 사라져갔다. 하지만 비극은 이어졌다. 백신에 사용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다시 병을 일으키는 능력을 갖는 ‘백신 유래 소아마비’ 사례가 보고된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자연적으로 발생한 소아마비는 174건이지만 백신 유래 소아마비는 367건에 달한다.
물론 단호한 결단으로 수많은 사람을 구한 사례도 있다. 2013년부터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병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수많은 제약회사는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후 방역과 환자격리 등 보건 조치로 발병 사례가 감소했고, 대부분의 제약회사가 백신 개발을 중단했다. 그러던 중 2018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다시 에볼라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용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가 없던 상황에서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면밀한 검토를 통해 3상 임상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분석하던 백신을 긴급 접종키로 결정했다.
WHO의 결정은 성공적이었다. 당시 약 10만 명의 의료종사자와 감염 접촉자 중 감염된 사람은 71명, 사망자는 9명에 그쳤다. 에볼라의 치사율이 60%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기적적인 수치였다.
위에서 살펴본 두 가지 백신의 사례는 정상적인 시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람에게 접종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어떤 백신은 사람을 죽였는가 하면, 다른 백신은 사람을 살렸다. 이 차이는 실험과 접종에 필요한 안전 수칙을 얼마나 준수했는지가 갈라놨다.
‘과거’라는 이름의 스승은 우리에게 ‘안전’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그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는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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