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이슈

라면과 김밥만 먹던 그가 스페인에 가는 이유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 전공 교수 2020년 11월호



가성비, 가심비에 이어 가치소비 트렌드가 뜨고 있다. 가치소비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본인의 만족도가 높은 재화와 서비스에 과감히 소비하고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소비를 절제하는 성향을 지칭한다. 정의상으로 보면 가치소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비자는 언제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제품과 서비스에 돈을 써왔고 지금도 그렇다. 왜 새삼스럽게 가치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을까? 이는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밀레니얼 윗세대 소비자들이 추구하던 가치의 두 키워드는 과시 가능성과 품질 대비 낮은 가격이다. 개인의 가치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타인지향적 소비행위가 보편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들에게 자신의 부와 지위, 힘을 과시하기 위한 과시소비가 중요해지고 유명 럭셔리 브랜드를 구매할 때는 품질보다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가로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한다. 반면 과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비영역에서는 낮은 가격이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된다. 남이 보지 않는 사적인 영역에서 소비되는 필수품 같은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발품을 파는 현상이 나타난다.

밀레니얼 및 Z세대의 가치소비는 자기만족적이고 실속지향적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이끌어가는 가치소비는 그 내용이 다소 다르다. 서구의 개인주의 가치를 흡수하고, 풍요로워진 사회 탓에 개인 단위의 생존과 독립이 가능해진 오늘날 젊은 세대는 윗세대에 비해 타인지향성이 매우 낮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남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수의 패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을 발굴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가치소비는 과시적이기보다는 자기만족적인 성격이 강하며 실속지향적이다.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향유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 가격보다 품질지향적인 성향을 보인다. 얄팍한 주머니를 가지고 동일한 품질 대비 최저가격을 추구하던 윗세대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 수준에서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는 제품을 찾아나서는 특징이 있다.
새로운 가치소비의 가장 큰 특징은 본인이 가치를 부여하거나 만족도가 높은 극히 한정된 분야에서 매우 과감하게 소비한다는 점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소비자들이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분야는 여행과 건강한 먹거리, 가전제품, 의류 등의 순이다. 멋진 운동화를 사거나 매일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거나 택시를 타는 돈을 아끼는 대신 휴가 때 럭셔리 호캉스를 즐기거나 캐나다 오지의 오로라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식이다. 수개월 동안 라면과 김밥을 주식으로 삼아 비용을 모은 다음 스페인의 프로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날아가기도 한다. 이런 특별한 경험은 SNS에서 좋은 자랑거리가 된다. 많은 사람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물질을 과시하는 것보다 개인의 심리적 만족과 행복을 과시하는 것이 더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소비는 추구하는 가치의 유형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첫째는 자족형 가치소비다. 이에 속하는 소비자들은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니즈에 충실하게 소비함으로써 자존감을 고양하고 심리적 만족감을 추구한다. 이들은 성장을 위한 다양한 배움이나 여행, 취미활동, 건강증진, 심리적 위로와 힐링을 위한 소비에 많은 돈을 쓰고 최고급의 품질을 추구한다.
둘째는 실속형 가치소비다. 타인의 시선을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은 자족형과 같으나 가격 대비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유형은 다른 소비자에 비해 유명 브랜드 지향성이 낮고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B; Private Brand) 상품을 더 많이 소비한다. 실속형 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스스로가 합리적이고 스마트하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이다. 이들은 수많은 정보를 탐색하고 비교하며 똑똑한 소비자로서의 자신감을 과시하고 기꺼이 시장의 소비전문가로서 가치소비 트렌드를 보급하는 데 앞장선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창출하라!
셋째 유형은 의미형 가치소비다. 개인적 욕망 대신 친환경이나 공정함, 공생, 윤리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소비자들은 제품 자체의 품질이나 가격보다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의 여러 이슈에 주목한다. 생산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하거나 노동착취를 하거나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거나 비윤리적인 갑질행위를 하는 기업의 제품은 보이코트(boycott)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기업이나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운동(바이코트, buycott)을 벌인다. 나아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기도 하고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스스로 무보수 브랜드 양육자가 되기도 한다. 의미형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다른 유형에 비해 아직은 소수지만 계속 성장하고 있고 목소리가 커서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새로운 가치소비 트렌드에 시장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대응의 핵심은 소비자 개개인이 원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제품에 구현해 소비자가 소비를 통해 자긍심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30만 원이 넘는 가격을 주고 찢어진 현수막으로 만들어진 가방을 구매한 소비자나 유기견 보호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소비자는 많은 것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소비한 것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어떤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품 자체보다 제품 생산과 유통 및 소비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부가되는 서비스를 설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타깃과 제품의 초세분화로 이어질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막대한 비용이 들고 부담이 되는 변화지만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지 않을까?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