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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 마인드> 실제 모델인 천재 수학자 존 내시도 수상자
이지연 『나라경제』 기자 2020년 12월호
노벨 경제학상은 1969년부터 올해까지 총 86명에게 수여됐다. 그동안 국적별로는(이중국적 포함) 미국인이 61명으로 가장 많이 받았고,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10명과 4명으로 뒤를 이었다. 다른 노벨상과 달리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노벨 경제학상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지만 경제학 분야 최고 영예인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어떤 사람이 수상했는지 알아보자.
우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라고 경제학자나 경제학 전공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허버트 사이먼은 1978년 경제학 비전공자로는 처음으로 수상자가 됐다. 정치학을 전공한 사이먼은 인지과학, 컴퓨터과학, 정치학, 경영학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학자로 평가받는다. 인공지능(AI) 분야의 선구자로도 알려진 사이먼은 1975년에는 컴퓨터과학 분야에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튜링상도 수상했다.
이스라엘 출신 대니얼 카너먼은 심리학자로,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 분야를 개척해 2002년 수상했다. 첫 여성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은 정치학자였다. 미국 UCLA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오스트롬은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의 실제 모델로 대중에 잘 알려진 천재 수학자 존 내시는 1994년 존 허샤니, 라인하르트 젤텐과 함께 게임이론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정신질환으로 오래 투병하는 와중에 게임이론에서 가장 유명한 균형개념인 ‘내시균형(Nash Equilibrium)’을 정립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부부 수상자도 있었다. 인도 출신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프랑스 출신 에스테르 뒤플로는 미국 MIT에서 지도교수와 학생으로 만나 2003년 MIT에 빈곤행동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수년간 함께 연구활동을 이어가다 2015년 결혼했다. 2011년 빈곤 문제를 다룬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Poor Economics)』를 공동 저술했고, 빈곤 퇴치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마이클 크레이머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뒤플로는 최연소 수상자(당시 46세)이자 2009년 오스트롬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수상자이기도 하다. 한편 스웨덴 출신 군나르 뮈르달도 부부로 수상한 사례다. 다만 그는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아내인 알바 뮈르달은 1982년 노벨 평화상을 각각 수상했다.
수상자가 논란의 대상이 된 경우도 있다. 밀턴 프리드먼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그러나 그의 1976년 노벨상 수상 소식은 거센 비난을 받았다. 1975년 칠레를 방문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비롯한 관료들을 만나 경제정책에 대한 조언을 하는 등 칠레 군사독재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스는 금융파생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수리모델을 개발한 공로로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학자로서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했을 때는 큰 실패를 경험했다. 두 사람이 파트너로 참여한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이듬해 순식간에 46억 달러의 손실을 입으며 무너진 것이다. 이 사건은 금융투자의 리스크를 알리는 교훈으로 남았다. 1998년 수상자로 인도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 선정됐을 때, 일각에서는 노벨위원회가 LTCM을 둘러싼 비판을 의식해 불평등과 빈곤에 대한 연구로 ‘경제학의 양심’, ‘경제학의 데레사 수녀’로 불리는 센을 선정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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