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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이론 발전에 기여한 사제지간
김정유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2020년 12월호


경매는 중요한 거래방식 중 하나다. 전통적으로 미술품 판매에 많이 이용돼왔고, 최근에는 이베이(eBay)를 비롯한 많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통해 그 활용도가 점차 증대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경매이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시대를 수십 년 앞서가던 199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비크리가 1961년 발표한 획기적인 논문으로부터다. 당시에는 그의 논문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경매이론의 주요한 근간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결과가 그의 통찰력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경매이론은 로버트 윌슨, 폴 밀그럼, 로버트 웨버 등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했고, 이러한 경매이론의 발전은 존 내시 이후 존 허샤니, 라인하르트 젤텐, 데이비드 크랩스, 윌슨 등에 의해 꾸준히 진행돼온 게임이론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수학 전공한 두 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까지
제자 밀그럼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윌슨 교수의 경매이론에의 공헌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윌슨 교수 이전까지는 주로 각 입찰자의 가치가 독립적이라는 독립가치 가정하에 경매이론이 전개됐지만, 윌슨 교수는 1970년대에 발표한 일련의 논문, 특히 1977년 논문을 통해 공통가치경매에서 ‘승자의 저주’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였다. 둘째는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 다수물량경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단일가격 경매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밀그럼 교수의 공헌은 윌슨 교수의 결과를 일반화시키고 경매이론을 크게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유명한 1982년 논문에서는 독립가치경매와 공통가치경매를 어우르는 매우 일반화된 경매모형으로부터 경매이론의 많은 주요 결과를 도출하고 증명했다.
윌슨 교수와 밀그럼 교수가 함께 참여한 1994년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 주파수 경매에서는 이들이 제안한 동시오름 경매방식이 채택돼 200억 달러의 수익이 났다. 동시오름 경매방식이란 여러 물품의 경매를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인데 그 장점은 따로 진행하는 경우의 비효율적 배분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매자 1은 A, B 제품을 모두 높은 가격에 구입하고 싶어 하고, 경매자 2는 A만 경매자 1에 비해 약간 더 높은 가격에 구입하고자 한다면 경매자 1에게 두 제품을 모두 판매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두 경매를 따로 진행하게 되면 A경매에서 경매자 2가 이기고, A와 B 제품 둘 다 사고 싶어 했던 경매자 1은 B경매에 아예 참여하지 않게 되므로 비효율적 자원배분을 초래한다. 이런 경우 경매를 동시에 진행하게 되면 이와 같은 비효율적 배분을 막을 수 있다.
윌슨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모두 마쳤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와 경영학박사(DBA)를 취득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윌슨 교수를 지도했던 하워드 라이파 교수는 윌슨 교수를 두 번의 돌연변이를 거친 종자라고 평가했다. 먼저 수학 전공자가 가장 비수학적인 하버드 MBA로 진학하는 보기 드문 돌연변이가 발생했고, 역시 비수학적인 하버드 DBA 과정 이후 또다시 수학적인 분야로 회귀하는 두 번째 돌연변이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윌슨 교수는 늘 자신은 하버드대에서 배운 것이 거의 없고 혼자 독학했다는 말을 하곤 했다. 당시 라이파 교수를 비롯해 몇몇 동료와 함께 의기투합해 만들었던 주례 세미나가 바로 윌슨 교수가 언급했던 지식의 장이었고, 이 세미나 시리즈는 훗날 윌슨 교수의 학문적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라이파 교수는 윌슨 교수의 하버드 DBA 진학은 결과적으로 그의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밀그럼 교수 역시 미시간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보험계리사로 다년간 활동하다가 스탠퍼드대 MBA 과정에서 윌슨 교수를 만났다. 윌슨 교수는 밀그럼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보고 박사 과정을 권유했고, 밀그럼은 윌슨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과정에서 윌슨 교수의 경매이론을 완성했다. 이렇게 맺어진 사제의 연은 최고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를 가르친 윌슨 교수
윌슨 교수는 필자에게는 한마디로 영웅이다. 박사 과정 1년 차부터 윌슨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이 수업은 전 세계에서 윌슨 교수에게 보내오는 아직 발표 안 된 게임이론 논문들 중 약 20개 정도의 논문을 그가 직접 엄선해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시험 한번 없이 논문을 써서 제출하면 그것으로 성적이 나오는데, 학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 때나 써서 내면 그때까지 성적이 I(미완성)로 있다가 A, B, C로 바뀐다. 논문을 제출하고 나면 늘 윌슨 교수는 자신의 엄청난 인맥을 과시하듯 관련된 연구를 하는 영향력 있는 교수들을 연결해주곤 했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그의 신념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다. 합리성이라고 하면 보통 게리 베커를 위시한 시카고 학파의 학자들을 떠올리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윌슨 교수만큼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가 강한 사람도 드물다. 예컨대 1990년대 초 인간의 합리성 가정에 대한 비판이 팽배하면서 학습이론이나 진화론적 게임이론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도 크랩스나 밀그럼과는 달리 그러한 접근방식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따라서 학습이론이나 진화론적 접근은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나 역시 윌슨 교수의 영향으로 진화론적 접근방법을 뒤늦게야 받아들였다. 이는 윌슨 교수도 틀릴 수 있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만큼 그의 합리성에 관한 신뢰가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윌슨 교수의 강의는 내게 최고였다. 어떤 사람들은 윌슨 교수가 강의를 못한다고 한다. 만약 교수로부터 문제를 푸는 분석기법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교수의 게임이론을 보는 식견과 학문관, 통찰력 또 학문적 영감을 얻기 위해 수업을 들었고, 그의 수업은 이러한 목적에 가장 부합했다. 그의 수업은 내게 큰 자부심과 자신감을 선물했다. 최고의 수준에서 연구하고 있는 게임이론가들의 최근 연구업적을 접하면서 나는 그 세계에 몇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밀그럼 교수의 강의를 통해 얻은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밀그럼의 수업은 세부적이지만 큰 그림을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반면 윌슨 교수는 세부적 분석에 있어서는 다소 엉성하지만 큰 그림을 보여주는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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