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이슈

RCEP으로 범아시아 공동 통상규범 확립돼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2021년 01월호



20여 년 전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은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핵심 사업으로 동아시아 FTA 구축을 제안했다. 원래 동아시아 지역 13개 국가로 논의가 시작됐으나,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 인도,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포함한 아세안+6 국가 간 FTA를 제안하면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굳어졌고, 8년 전에 시작했던 협상이 타결돼 지난 11월 15일 공식 서명됐다. 그 사이 동아시아 국가들은 많은 양자 간 협정을 체결했지만, RCEP은 범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첫 FTA이고, 부분적이나마 지역 공동의 통상규범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지만,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기조의 통상정책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WTO 위상 약화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고, 미국 워싱턴 소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판단하듯 어쩌면 WTO가 이미 국제무역 관리 기능을 상실했을 수 있다. 새로운 무역질서가 확립될 때까지 FTA 네트워크가 WTO 체제를 대체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고, 이번에 체결된 RCEP은 동아시아 역내 무역 유지에 긴요한 장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RCEP의 경제효과 실현을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 먼저 협정의 조기 발효가 중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체결된 협정이 통상 2~3년 후 발효됐다. RCEP은 최소 6개 아세안 회원국과 비아세안 3개 국가가 국내 비준 문건을 아세안 사무국에 기탁한 후 60일째 되는 날에 발효된다. 각 국가별 일정과 국내 여건으로 9개 국가 비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RCEP 사무국 역할을 해온 아세안과의 협력을 통해 조기에 비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RCEP 협정문은 20개 챕터로 구성돼 포괄적인 협정 형태를 갖췄으나, 기존 한아세안 FTA 등 아세안+1 형태로 체결된 무역협정을 부분적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구속력 있는 신규 규범이 많지 않다. 17개 부속서 등을 합치면 총 1만5천 페이지가 된다는 것은 통합 협정을 만들지 못해 양자 간 합의 내용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부분 기존 양자 간 협정과 비슷한 내용이고 한아세안 FTA 발효 초기 관세양허 파악에 혼선이 있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통상당국은 협정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존 협정과의 차이점 등을 설명자료로 작성해 조기에 널리 배포할 필요가 있다.
범지역적 FTA는 역내 무역거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고 원산지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 통상당국도 RCEP의 원산지 관리 이점을 홍보하고 있다. 이는 누적원산지를 폭넓게 인정할 때 해당된다. 하지만 RCEP은 가장 기본적인 양자누적(15개 회원국 중 쌍방 간에 공급된 재료를 역내산으로 간주)만 인정하고 있어 회원국 간 가치사슬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협상 과정에서 통상당국이 설명했던 교차누적(해당 FTA 회원국이 체결한 다른 FTA의 회원국에 의해 공급된 재료를 일정 조건하에 역내산으로 간주)은 인정되지 않았다. RCEP의 경우 품목별 단일 원산지 기준을 설정한 점을 제외하면 기존 한아세안 FTA와 중국, 호주, 뉴질랜드와 체결한 FTA에 비해 시장개방이나 규범 측면에서 크게 나아진 점이 없다. 통상당국은 조기에 협정을 발효시키고 시장개방 확대 및 교차누적 인정을 위한 업그레이드 협상을 논의해야 한다.
RCEP 서명으로 일본과 낮은 수준의 FTA를 체결한 셈이다. 최근 국내에서 일본이 주도해 발효시킨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모든 CPTPP 회원국이 동의해야 가입이 가능한데, 현재의 한일 관계로 보면 불가능에 가깝다. RCEP 발효 후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해 양국 간 앙금을 털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도가 협정 서명에 빠진 것은 아쉽다. 개방정책을 내세웠던 모디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수지 적자 악화 우려를 이유로 2019년부터 RCEP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최근 인도 내에서도 RCEP 참여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므로 인도가 복귀할 수 있도록 외교통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