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주식 안 하면 바보’인 시대가 왔다. 예전에 사람 셋이 모이면 정치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은 테슬라나 삼성전자 주가 이야기를 한다. 20대 대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공매도에 대한 찬반을 논하는 시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식거래활동 계좌 수는 3,548만 개에 달한다. 2019년(2,936만 개)에 비해 1년 새 612만 개가 늘어났다. 대한민국 인구인 5,160만 명(2018년 세계은행 기준)으로 나누면 1인당 0.69개의 계좌를 가진 셈이다. 이는 세계 최대 증권시장을 가진 미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개인 주식계좌 수는 1억200만 개로, 인구당으로 보면 한국의 절반에 불과한 0.31개다.
그 중심에는 2030세대가 자리한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계좌개설 고객 가운데 20~30대 비중이 66%를 넘어섰다. 특히 20대 고객은 전년 대비 3배 넘게 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2030세대의 주식투자 열풍을 마냥 좋다고 하기엔 한구석이 씁쓸하다. 투자 저변이 확대되고 자본시장의 꽃인 주식시장이 호황을 맞아 역사적인 코스피 3,000 돌파를 일궈낸 점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용·취업에 대한 불안과 저성장·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소득 정체가 자리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약 5억7천만 원이다. 지난해 직장인 평균 연봉(3,744만 원)을 최소 15년은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다. 일부 청년에게 ‘내 집 마련’은 사치다. 직장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취업을 한 적이 없는 청년 실업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32만 명을 기록했다.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손에 꼽는다.
프리랜서 김모 씨(39)는 지난해 10년 넘게 하던 일을 그만뒀다. 외식업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던 그는 코로나19로 업황이 나빠지면서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불안하던 때, 작게나마 수입을 갖게 해준 대안이 주식이었다. 김씨는 “다른 일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게 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2030세대 개미들이 이끌어낸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금융권의 각성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2030 개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공부한다’는 점이다. 유튜브, 머니레터, 주식 서적 등을 통해 공부하고, 심지어는 주식 스터디까지 꾸린다. 공부하는 개미들은 제도권 전문가보다 주식 유튜버나 슈퍼 개미를 더 신뢰했다. 증권사들은 부랴부랴 뒤늦게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이는 그동안 금융권이 외면해온 투자자 수요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유명 경제 유튜버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왜 유명하냐”는 질문에 “존 리처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급 가운데 존 리 대표처럼 대외활동이 활발한 사람은 손에 꼽힌다. 동학개미운동 이전까지만 해도 증권사는 투자은행(IB) 부문을 키우고, 지점 등 리테일 부문을 줄이는 추세였다. 고객과의 접점을 점점 줄였다. 그러나 동학개미운동은 개인투자자들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증권사가 유튜브 등 새로운 채널을 통해 투자 접점을 넓히도록 만들었다. 투자문화의 중심을 ‘개인’으로 끌어온 것이다.
2030세대 개미가 일군 변화들은 코스피 3,000의 밑거름이 됐다. 저금리·저성장 시대 청년세대의 주식투자 열풍은 한편으로 가슴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놀랍다. 앞으로도 이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