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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지 못한 사회에서 ‘민달팽이’가 외치는 스위트홈


민달팽이유니온은 2011년 대학생 주거권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시로 주거상담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당사자인 청년들과 함께 행복주택 입주기준 완화, 청년 주거상담 제도화, 청년 월세지원정책 공동 설계 등 제도 개선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십여 년간 청년 주거 문제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현재 청년들의 집은 전혀 스위트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청년들은 오히려 집이 무색무취이기만 해도 좋겠다고 말한다. 자산의 불평등, 공간의 불평등, 권리의 불평등 등 다양한 격차들이 얽혀 마침내 삶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에서 청년의 스위트홈은 과연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누군가는 ‘영끌’해서 집을 산다고들 하는데, 나는 왜 현상 유지만으로도 버거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들려온다. 집값은 치솟고, 월세도 비싸지고, 일자리는 불안정한 여건 속에서 열악한 환경의 거처를 ‘내 집’으로 선택하고 있는 청년들의 삶을 매일 목격한다. 소위 ‘신쪽방촌’이다. 신쪽방촌의 임대인은 임대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무실, 주차장, 심지어 당구장으로 허가받은 공간을 불법으로 증·개축하거나 ‘방쪼개기’를 한다. 이런 공간들이 원룸, 하숙, 고시원 등의 간판을 달고 청년의 스위트홈으로 흩뿌려지고 있다. 이런 ‘불법’ 건축물들은 위반건축물로서 단속 대상이다. 사실 애초부터 주택인 척 공급되지 않도록 규제돼야 하는데, 어쩐지 ‘너무나 잘 방치되고 있다’는 게 전국의 임대업자들에게 소문이 난 것이 ‘웃픈’ 지점이다.
지난해 서울 관악구의 특정 골목을 조사하면서 2000년대 이후 신축된 원룸 건물들 중 80~90%가 위반건축물이길 작정하고 방쪼개기를 한 뒤, 청년들에게 원룸을 공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비단 관악구의 한 골목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공간이 불법인 것을 떠나 추위와 더위, 곰팡이와 해충에 더 취약한 ‘집답지 못한 집’이 방치되고 있는 점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회진입계층인 청년들은 집답지 못한 집에서 과도한 주거비를 지불하며 살아가곤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임대인의 부당한 횡포에 무방비하게 방치된 세입자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청년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71.4%가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이유로 ‘사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집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안정적인 주거를 꿈꾸기 어려운 현실을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매일같이 생각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고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을 함께 하며, 우리 사회가 주거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거권’은 물리적·사회적·경제적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쾌적한 주거를 누릴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주거권은 곧 소유권으로 읽히고 있진 않은지, 때로는 주거권이 곧 투기할 자유로 해석되고 있진 않은지 의문스럽다.
LH 사태를 겪으며 투기 권하는 사회 풍조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주·점유의 형태와 상관없이 주거안정은 권리 그 자체로 보장돼야 한다. 앞으로도 민달팽이유니온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의 삶이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투기로 얼룩진 사회에 저당 잡히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산의 격차가 삶의 격차로 직결되지 않는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공간과 권리가 존재하는 스위트홈이 이뤄지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