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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대 교수의 ‘별 볼 일 없는’ 시골살이
채상헌 연암대 스마트원예과 교수, 『리얼 포레스트』저자 2021년 04월호


시골살이는 농부로 직업을 전환하거나, 농촌으로 거주공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난 1월 27일부로 나는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도전을 위한 공간적 변화를 시도하고자 시골살이에 나섰다.
이사 첫날. 아파트에서 나와 농가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27년이나 된 벽돌 건물이지만 지붕 두께가 18cm나 될 정도로 튼튼하다. 하지만 당시의 단열재는 튼튼하기만 했나 보다. 첫날은 양말을 신고 모자를 쓴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창틀 공사를 알아봤더니 날이 풀려야 가능하다고 한다.   
5일 차. 닭은 새벽이 왔다고 우는 것이 아니라 새벽까지 우나 보다. 밤새 교대로 울어대는 동네 닭들 얘기다. 지방에 방송 촬영을 하러 갔을 때 PD가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너무 좋다고 하더니, 아침에 만났을 때는 거의 한숨도 못 잤다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14일 차. 엊그제부터 스마트폰 지문인식이 되지 않더니, 전입 초기라 부동산 이전 등 행정처리가 많은데 주민센터의 자동발급기 이용이 불가해졌다. 손가락 지문이 이렇게 쉽게 닳아 없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귀농 2주 만에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했도다. 
35일 차. 우수가 지난 지 2주가 됐지만 산골의 절기는 더디다. 아직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자동차 유리창을 한참 긁어야 앞이 보인다. 시원한 공기, 맑은 물, 밤하늘의 별들을 누리자면 따뜻한 배관 파이프가 지나가며 덥혀 놓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잊어야 한다.  

39일 차. 아내에게 시골로 가면 먹거리는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전에 살던 분이 텃밭 여기저기에 심어 놓은 쪽파를 한군데 모아 놨더니 먹을 만큼의 길이로 싹이 자라났다. 신기해하며 다음에는 뭐가 나오는지 묻는 아내에게 차마 다양한 잡초가 좀비처럼 계속 나올 것이라고는 말 못한다. 비닐멀칭을 해서 심은 것만 나오도록 텃밭 관리를 해야겠다.    
40일 차. 쇠스랑 자루가 부러져 사다 끼웠더니 이번에는 날이 부러졌다. 면 소재지 철물점까지 다녀올 시간에 작업을 다 마칠 수 있을 것 같아 이가 빠진 상태로 계속 작업을 했지만 절반만 마치고 포기했다. 내가 힘이 센 것인지 힘으로만 하는 것인지, 모종삽, 호미, 레이크에 이어 네 번째다. 트랙터로 하는 3천 평 농사보다 괭이로 하는 3평 농사가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2일 차. 장롱 속의 헌 옷가지는 훌륭한 작업복 역할을 한다. 시골로 올 때는 다 버리고 올 것이 아니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도시생활의 습관과 욕심만 버리고 와야 할 것 같다. 헌 옷가지도 버리지 말고 가져와야 작업복으로도 쓰고, 나중에 동파 방지를 위해 야외 수도라도 싸매기 때문이다. 
44일 차. 이사 후 처음으로 체중계에 올랐더니 4kg 이상이나 줄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앉았다 일어설 때 전에 없던 어지러움을 느끼고는 한다. 마당과 텃밭 일을 줄이고 싶지만 봄은 성큼 다가와 있고 진퇴양난이다.     
51일 차. 엊그제 밤에는 갑자기 정전이 됐다. 우리 집만 그런지 아내와 밖을 나가보니 동네 전체가 깜깜하다. 윗집도 태양광 정원등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돌아서며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 주변이 어두워서 그런지 더욱 별천지였다. 그러고 보니 마을로 이사 온 지 50일이 지났지만 처음 며칠 말고는 밤하늘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사 오기 전 시골생활을 망설이던 아내에게 ‘하늘의 별도 보며 살 수 있다’고 했건만…. 일을 좀 더 줄이고 별 볼 일 있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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