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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직접 접속하는 주거환경 만들어야”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장, 명지대 건축대학장 2021년 04월호


대한민국은 왜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까? 왜 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할까? 아파트가 스위트홈이 되려면? 이 물음에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이하 국건위) 위원장은 아파트가 아닌 ‘아파트 단지’로 접근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 위원장에게 ‘아파트 한국사회’에 대해 들어봤다.

‘집’ 하면 아파트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가장 보편적인 주거수단이 됐다. 그 배경은?
우리나라는 전체 주택의 62% 정도가 아파트고 가구 비율로는 51%가 아파트에 산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양적인 부분도, 아파트도 아닌 ‘아파트 단지’ 때문이다. 우리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엄청난 압축 성장을 했다. 이 기간에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들이 소득수준 향상에 맞춰 더 좋은 집, 환경, 동네를 갈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국가적인 노력을 경제개발, 수출 등에 집중하고 있어 동네마다 공원·도서관 확충 등 주거환경 개선에 힘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이에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 제정 등을 시작으로 민간 건설업체의 아파트 건설 확대를 통해 주거 공급을 촉진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당시 공공영역이 제공하지 못하는 인프라를 민간영역인 아파트 단지가 제공해 주니 중산층이 선택할 수 있었던 주거수단은 아파트였다.

싱가포르, 홍콩 등도 아파트가 주요 주거수단인데,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나?
1950~1960년대 황금시대를 경유하며 늘어난 중산층의 눈높이를 충족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섰다는 점이 다르다. 정부가 생활SOC에 막대한 투자를 해 ‘좋은 동네’를 제공했기 때문에 구태여 아파트에 담장을 두를 필요가 없었다. 파리는 길가에 아파트가 일반 건물처럼 한 채씩 서 있다. 단지구조가 아니라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집과 공공영역이 ‘직접 접속’해 있고 집을 나오는 순간 사회다. 즉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동네의 공공 공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간구조다.

아파트 단지가 공공과의 직접 접속을 막으며 생겨난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놀이터를 예로 들어보자. 아파트 단지는 내 집을 나서도 계속 아파트 단지 안이다. 사회와 직접 접속하는 공간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단지 밖에 놀이터가 생기고 골목환경이 좋아지는 것은 아파트 주민들의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단지 내 놀이터 정비가 더 중요하고, ‘더 좋은 생활환경’을 누리기 위해서 자금을 모아 더 좋은 단지로 이사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단지 밖 놀이터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투표권을 가진 국민의 절반이 아파트 단지 안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공공시설 투자는 약할 수밖에 없다. 공공영역을 자신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로 여길 수 있는 공간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동네 놀이터 등에 대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다.

아파트 단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더 이상 단지를 만들지 말자. 새로 짓는 아파트는 공공과 상생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기존 단지의 ‘재생’이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재건축할 때 단지를 허물고 블록별로 짓자. 민간아파트는 아파트 안에 길을 만들어 단지 밖의 공원과 연결해 보자. 더 나아가 아파트 단지 사이의 ‘죽은 길’인 잔디밭과 담장 경계부를 주민 동의를 얻어 작은도서관이나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재생하는 거다. 공공건물이 담장 역할을 하니 사생활 침해 우려도 해소되고, 그 안에 상업시설이 들어서면 주민들이 경제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 지역 입장에서는 죽었던 길이 살아나니 지역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는 윈-윈 구조가 된다. 지금은 아파트를 재건축하기 전에는 경계부 재생을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이 제안을 현실화할 수 있는 법부터 만들어야 한다.

아파트는 사는(buying)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이유도 아파트 단지와 관련 있을까.
그렇다.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하지만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투기 문제가 불거질까? 그것도 아파트 단지에 원인이 있다. 아파트 단지는 ‘직접 가보지도 않고 계약할 정도’로 표준화돼 있다. 동네를 표준화시켜 사고팔기 좋은 간단한 상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선호하는 재테크수단이 된 것이다. 아파트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 되려면 더 이상 단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아파트 단지가 무조건 우리 사회에 나쁜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는 우리나라 압축성장의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지만,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집단’의 에너지로만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 국민 개개인의 에너지가 소중한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나. 개개인의 창의와 에너지가 서로 얽히고설켜 상생작용을 하며 작동하는 사회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국건위가 스위트홈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크게는 우선 3기 신도시에서 ‘단지가 아닌 아파트’를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단지를 쪼개서 공공 공간과 직접 접속할 수 있는, 담장 없는 아파트를 만들어 새로운 주거 공간에 대한 국민의 심리적 방어를 허물고자 한다. 두 번째로 국건위는 좋은 도서관, 어린이집, 쉼터 같은 작은 건물을 설계할 때 설계공모를 하도록 하고 있다. 여태까지의 공공건축 설계는 가격 입찰 방식이었다. 파출소, 우체국 등이 좋은 설계를 통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행정 편의에 의해 가격에 맞춰 설계된 것이다. 가격이 아닌 실력으로 뽑는다면 훌륭한 공공건축물이 거리에 늘어서게 돼 동네환경이 개선되고 설계자에게도 좋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행정력이 조금 더 들더라도 국민들이 보다 행복한 환경 속에서 편리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생겨날 활력이 모인 사회가 갖는 힘은 엄청나지 않겠는가.

공공건축물 설계공모 등으로 동네환경이 개선된 우수사례가 있다면.
2009년 영주시는 전국 최초로 민간전문가를 활용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해 건축공간연구원(auri)과 도시 주도 공공건축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지자체의 관리·기획 능력을 키워야 열악한 공공건축물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 auri는 영주시가 합리적 공공건축 관리 시스템을 갖추도록 기술적·전문적 지원을 했다. 총괄건축가를 임명하고, 엄선된 심사위원 사전공개 등 공정성이 보장된 설계공모 과정을 통해 다수의 실력 있는 설계공모자를 유치하고, 좋은 설계를 뽑아 훌륭한 공공건축물들을 지을 수 있었다. 영주시 공공건축물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공공건축계에서는 유명한 사례다. 게다가 서울시 같은 큰 도시가 아닌 인구 10만 명 규모의 평범한 도시에서 이뤄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스위트홈이란 어떤 모습인가.
젊었을 때는 집을 지을 경제적 여건이 안 됐고, 다른 대안이 없었으니 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다 아파트를 청산하고 단독주택을 지어 10년째 살고 있는데, 다시는 아파트로 못 갈 것 같다. 아파트에서는 내 이웃이 나와는 다른 생활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추상적으로는 알지만, 즉각적으로 느끼기 어렵다. 반면 단독 또는 다가구주택은 집을 나설 때마다 ‘나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이웃과 함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공간구조를 갖고 있어 톨레랑스가 커진다. 그것이 바로 ‘스위트’해질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나와 다른 이웃과 부딪히는 기회를 얼마나 주는 집이냐가 다른 것 못지않은 ‘스위트홈’의 중요한 조건이라 생각한다. 물론 아파트 단지를 스위트홈이라고 여기는 분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이웃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를 희생해 얻은 편리함으로 잃어버린 것과, 그 공간구조를 통해 만들어진 우리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거정책 관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국민 절반 이상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구조에 살게 하는 주거정책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정책이다. 자신의 스위트홈을 만들기 위해 쏟는 자발적 에너지가 스위트동네와 도시를 만드는 에너지로 작동하는 공간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스위트홈은 스위트한 동네, 스위트한 도시 속에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 아닌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책무다.

 
신정아 『나라경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