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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비용·고효율 중심에서 안정과 신뢰로
이진혁 이코노미조선 기자 2021년 06월호


애플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대만 제조업체 폭스콘의 리우 영 회장은 지난해 6월 “‘세계의 공장’처럼 일부 국가에 (공급망이) 집중된 과거의 모델은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서 100만 명의 인력을 거느린 폭스콘도 공급망을 쪼개 다른 나라로 이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콘은 올해 1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아이패드와 맥북 공장 건설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인도에서 3월부터 아이폰 위탁생산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폭스콘을 세계 최대 전자제품위탁생산(EMS) 업체로 키운 곳은 중국이지만, 폭스콘은 현재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조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0월 대만 투자은행(IB) 전문가 CY 후앙의 말을 인용해 “애플의 중국 협력사 럭스셰어가 ‘미니 폭스콘’으로 성장한 건 공급망 재편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중국과 그 이외의 공급망을 분리하려는 애플의 전략에 따라 부품업체의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앙은 “폭스콘도 중국의 생산시설을 언젠가는 매각해야 할 것”이라며 “애플은 중국시장 공급을 중국 업체에 맡기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미중 무역갈등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나라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대만 기업들은 최근 수년간 중국 내 생산시설을 중국 경쟁업체에 매각하고 있다. 대만 스마트폰 케이스 제조업체 케이스텍은 중국 기업 렌즈에 생산시설을 433억 대만달러(약 1조7천억 원)에 매각했고, 대만 아이폰 부품업체 위스트론도 중국 럭스셰어에 공장을 매각했다.

코로나19가 뒤흔든 글로벌 공급망…탈중국화·지역화 움직임
중국을 떠나는 사례는 대만뿐만이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2월 24일 반도체, 전기차에 사용되는 고용량 배터리, 원료의약품, 희토류를 포함한 중요 광물 등 4개 품목의 공급망을 100일 이내에 재검토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값싼 노동력을 통해 수십 년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왔던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으로 이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미래 핵심 산업인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이 뒤처지자 글로벌 공급망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EU는 미국 대형 IT 기업의 독점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세를 추진하고, 중국에 편중된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남미, 서부 발칸과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신통상정책’을 지난 2월 발표했다. EU의 환경 기준을 따르는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탄소량에 따라 탄소세와 탄소관세를 부과하고 EU 배출권거래제(ETS)를 확대하는 내용도 검토하고 있다. 코트라는 “EU는 핵심 산업·제품군에 대한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또는 니어쇼어링(근거리 아웃소싱)을 통해 역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역내 공급망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경제의 탈중국화가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으로 전 세계 생산시설이 멈춰 서자 더는 특정 지역에 공급망을 집중시킬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첨단산업 패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과 EU는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물길을 좌우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기업들은 어떤 사태에도 안전하게 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는지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는 통제 가능한 곳에 생산시설을 두겠다는 ‘지역화’로 번지며 세계화까지 위협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비용·고효율 중심에서 안정과 신뢰로 공급망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은 1995년 WTO가 출범하면서 구축됐다. 당시에는 오프쇼어링(해외 이전)이 대세였고, 이런 현상은 중국이 2001년 12월 WTO에 가입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 생산공장을 짓고 나섰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기업과 협력하기 좋은 위치인 데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의 인구 대국에 진출하기도 쉬웠다.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2001년 중국 GDP는 9조5,800억 위안(약 1,724조 원)에서 2020년 101조5,989억 위안(약 1경8,287조 원)으로 급증했고, 글로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에서 16%로 커졌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은 쉽게 균열이 가지 않을 것 같았다. 베트남이나 인도, 멕시코, 브라질 등이 주목받았지만, 중국과 비교해 인프라가 부족했고 핵심 제조업에서 기술 노하우를 쌓은 중국을 대체하기 쉽지 않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현지업체가 타격을 입으면서 주변국으로부터 부품소재를 수입한 후 가공 또는 조립해 제3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0.5%p 떨어질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까지 나왔지만,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축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과 EU가 생산시설의 자국 복귀를 유도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축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정학적인 구도가 대립적으로 바뀔 때 글로벌 공급망이 한곳에 몰린 것은 리스크가 된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가 직격탄이 됐다. 전 세계 140개국이 무역 제한과 외국인투자 심사를 강화하며 빗장을 걸어 잠갔다. 바이든 대통령의 공급망 재검토 지시가 이어졌고, 지난 3월 9일 EU는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시장 점유율을 기존보다 2배 확대한 20%로 높이겠다고 발표하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집중된 아시아 견제에 나섰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업체 맥킨지앤컴퍼니가 지난해 7월 글로벌 기업 60곳의 고위 임원을 대상으로 공급망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약 93%는 ‘공급망 전반에 걸쳐 탄력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원자재의 이중 구매, 중요 제품 재고 확대, 니어쇼어링, 공급망의 지역화를 통해 이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미국 인베스코는 지난 12월에 낸 보고서에서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이 단기적인 수요·공급 충격을 유발할 뿐 아니라 미래 중국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비용 증가와 비효율 등의 우려 있어
수십 년간 이어진 글로벌 공급망의 종말이 다가온 것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 ‘글로벌 공급망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의 원천’이라는 기사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새판을 짜는 데 드는 비용과 이로 인한 비효율은 엄청나다”고 보도했다. 기업의 해외투자 자금이 36조 달러(약 4경 원)에 이르며, 보조금이나 관세로 보호받는 기업의 비용 증가는 소비자에게 숨겨진 세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 대기업이나 선진국조차 국내 이슈와 로비, 자국 생산의 단점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터 윌리엄슨 케임브리지대 저지비즈니스스쿨 명예교수는 “리쇼어링은 유연성과 혁신을 둔화시키며 비용을 증가시킨다”며 “한 지역에만 공급하는 것은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 공급자의 네트워크와 비교해 규모가 작고, 위기에 대응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옵션이 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세계화는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카를로스 코르돈 스위스 IMD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할 순 없지만, 지역적 차원에서 보면 어느 정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멕시코와 캐나다에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고, 아시아 국가들도 중국 외의 공급망을 찾아 나설 수 있다”며 “가령 중국이 아닌 터키에 공급망을 갖춘 유럽 회사는 생산 비용을 더 치르지만, 운송이 빨라 재고 비용이 줄어든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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