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 담긴 4대 핵심 품목에는 ‘의약품’이 있다. 가속화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의약품은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바이오안보의 중요성 때문에 더욱 부각됐다. ‘백신 민족주의’라고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미국은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 및 접종을 위한 ‘초고속 작전(OWS; Operation Warp Speed)’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백신 개발·생산 기간을 단축하고자 미국산 원부자재의 국외 유출을 막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내 제약산업 육성 전략 및 해외에 진출한 미국 제약회사의 국내 재유치(reshoring)로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건전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고품질 원료의약품의 원활한 공급이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 and Markets)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글로벌 원료의약품시장 규모는 1,822억 달러에 달하고, 향후 5년간 연평균 6.1% 성장해 2024년에는 2,452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전 세계 370개 필수 원료의약품 성분(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을 제조하는 시설 중 15%를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원료의약품의 88%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원료의약품 자급화 문제는 미국만의 것은 아니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제약선진국들도 다 같이 떠안고 있는 과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원료의약품 수입액은 약 2조4,250억 원(21억6천만 달러) 규모다. 이 중 약 8,700억 원(7억8천만 달러) 정도가 중국으로부터 수입돼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36%에 달했다. 중국산 원료의약품 수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6년 5억 달러(수입의존도 31.3%), 2017년 5억5천만 달러(33.5%), 2018년 6억2천만 달러(33.9%), 2019년 7억4천만 달러(34.9%)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2019년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16.2% 수준에 머물렀다(「2020년 식품의약품통계연보」 참고).
이제는 원료의약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우려하게 됐다. 중국 우한 지역 근처의 많은 원료의약품 공장이 정상가동이 안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무렵 인도마저 의약품 주성분 26종의 수출을 제한하며 안정적인 원료의약품 확보의 중요성을 학습시켰다. 코로나19 백신 부족으로 세계 각국이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백신 주권 못지않게 원료의약품 주권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차세대 먹거리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신약 연구개발(R&D)에서부터 의약품 생산·유통에 이르기까지 의약품 전 주기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해 나가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가치사슬을 이어주는 원료의약품의 R&D와 생산 역량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원료의약품 국산화와 수출을 통한 선진국시장 공략이 필요하다. 물론 고품질 원료의약품을 생산해 가격경쟁력 위주의 중국이나 인도 업체와 경쟁하려면 원료의약품 자급화 촉진을 위한 제도 개선과 정부의 투자 지원도 요구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산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에는 건강보험약가를 더 높게 책정해 제약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원료의약품 개발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완제의약품 용기·포장에 원료의약품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함으로써 국산 원료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것 또한 좋은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