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진행돼 온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다양한 이유로 변화할 전망이다.
먼저 미중 기술패권경쟁에 따른 공급망의 재편 가능성이다. 디지털경제가 미래의 먹거리로 대두되면서 관련 기술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제외한 기술 관련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이를 실행할 구체적인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두 번째 요인은 기술의 발전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자동화 및 로봇 기술의 혁신이 과거 노동 의존적인 생산 기술을 노동 절약형 생산 기술로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값싼 노동력을 가진 나라로 해외 외주(offshoring)하던 다국적 기업이 국내로 회귀(reshoring)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 번째 요인은 코로나19로 중요해진 공급망 복원성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면서 주요 필수품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각국의 핵심적인 경제목표가 됐다. 이에 그동안 효율성에만 초점을 둬왔던 글로벌 공급망이 안정적인 복원성 확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향후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방향은 국내로의 회귀 및 공급망 확충에 정책적인 초점이 집중될 것이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이 수십 년 동안 효율성에 초점을 두고 발전해 온 만큼 단시일 내 국내에서 공급망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글로벌화된 공급망이 지역별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즉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라 북미 지역에서의 공급망을 강화할 것이며, 특히 중국에 진출했던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산업에 따라 미국 또는 멕시코 지역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 EU 역시 기존의 경제통합 프로그램을 활용해 역내 공급망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는 중국을 소외한 ‘안보동맹’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해 기술패권경쟁에 우위를 점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지원 아래 일본, 호주, 인도의 공급망 협력이 가시화될 것이며, EU 역시 미국과의 공조 아래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하고 한국,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등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공급망 재편 가능성에 한국은 전략적인 접근방법을 취해야 한다. 북미 지역과의 공급망 연계 노력을 바탕으로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와의 공급망 협력 역시 강화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조속히 개시해, 중국에서 멕시코로 이전할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공급망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일본,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등과의 협력 역시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관계 정상화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속적인 기술혁신 노력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더라도 한국 기업이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면 공급망은 한국을 중심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고, 높은 기술력을 가진 국가가 공급망에서 배제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