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과 EU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EU는 미국과 중국 등 10개국과 이런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올라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동반자 관계 체결로 양자 간 협력이 외교와 안보,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됐다. 한·EU FTA는 EU가 아시아 국가와 체결한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이었고 비관세장벽 제거, 문화협력 등을 망라한, 이전보다 훨씬 앞선 협정이었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에 ‘무역과 협력에 관한 기본협정’이 개정됐다. 1996년 체결된 한·EU 기본협력협정이 주로 경제에 치중됐다면, 2009년에 개정된 이 협정은 외교·안보와 테러, 과학기술과 보건 등 광범위한 이슈를 포함했다. 우리와 EU는 양자는 물론이고 지역적·글로벌 차원에서도 공동 이슈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2014년 위기관리참여협정 체결로 우리는 EU와 ‘3대’ 협정을 체결한, 아시아에서 유일한 국가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이런 틀 안에서 한·EU 관계는 그동안 꾸준하게 발전해 왔다. 2017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후 보호무역 정책 분위기 속에서 EU는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질서 유지를 실천하는 정책을 이행해 왔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도 자유무역 유지가 매우 중요한 국익이기에 EU가 적절한 파트너였다. 그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EU에 특사를 파견했다. 정부 출범 후 한반도 주변 4강과 동시에 EU가 특사 파견 대상에 포함된 것은 처음이었다. EU와의 관계를 더 중시하고 공동의 글로벌 이슈에서 적극 공조하겠다는 게 특사 파견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양자 관계의 전반적인 진전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있었다. 대표적인 게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비준 건이다. 한·EU FTA에서 우리는 노조의 가입 범위 등을 제한한 관련 법을 개정하기로 약속했다. EU 측이 2018년 문제를 제기해 3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협의한 끝에 2021년 4월 비준 절차가 완료됐다.
FTA에 노동 관련 조항이 들어간 것은 한·EU FTA가 처음이었다. EU는 이를 관철시키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이처럼 EU는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이라는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국제 정치·경제에서 규범을 만들고 이의 확산에 힘써 왔다. 대표적인 게 탄소국경세다. 중국이나 우리처럼 ‘탄소 순수출국’의 경우 FTA를 체결했더라도 별도의 추가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EU는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중립적인 대륙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세금은 아무리 늦어도 2023년에 도입될 예정이다. 우리는 탄소국경세의 시행으로 예상되는 통상 분쟁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중견국 외교를 표방해 왔다. 기후위기 대응과 자유무역 유지처럼 국제사회의 공동 이슈를 적극 추진하는 데 같은 생각을 지닌 파트너가 필요하다. EU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이런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한 파트너로 남을 듯하다. 코로나19 발발로 양자 간의 보건협력도 시작됐다. 팬데믹은 앞으로도 지구촌을 종종 위협할 것으로 보여 이 분야도 새로운 협력의 장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