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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소비·기저효과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장기 추세로 보긴 어려울 듯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2021년 10월호
 
 
인플레이션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인플레이션 공포가 온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 말한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릭 스콧은 기자회견을 통해 당장 인플레이션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유가 5.5%, 빵이 7.4%, 주유비는 51%나 올라 서민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롬 파월 미국 연준의장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당장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인플레이션은 왜 왔을까? 주요 원인을 찾고, 각각의 원인이 일시적 요인인지 아니면 내년까지도 장기적으로 지속할 요인인지를 판단해 보자. 첫 번째로 꼽는 인플레이션의 요인은 막대한 규모로 풀린 유동성이다. 코로나19의 경제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강도 높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도입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주요국들은 역사상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를 도입하고, 최대 규모의 양적완화를 시도했다. 유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돈의 가치가 하락하고, 자연스럽게 물건의 가치가 상승한 것이다.

유동성 거두는 통화정책 정상화 진행 중…
수요 폭발도 보복적 소비·투자 측면 커

하지만 지난 2분기부터 통화정책 정상화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점진적으로 완화에서 긴축으로 정책 기조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을 앞둔 시점에 인플레이션의 첫 번째 요인인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뒷받침해 주긴 어려워 보인다.
둘째 요인은 수요 측면에 있다. 올해의 물가상승은 세계 경기회복 및 수요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백신 보급과 소비심리 회복 등으로 여행수요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항공권, 렌터카, 숙소 예약 건수가 두 자릿수를 넘어 세 자릿수로 증가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신산업 진출 등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수요가 급증했고, 특히 각국 정부의 예산이 인프라산업에 쏠리면서 원자재 수요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수요 초과로 인해 건축용 목재나 철스크랩(고철) 등의 공급이 부족해지고, 비용이 상승해 최종재 가격에 전가되고 있다.
다만 이런 일들은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잠재수요가 폭발하면서 나타나는 보복적 소비와 투자의 측면이 있어 장기적으로 증가세가 지속하는 기조적 수요와는 차이가 있다. 이 또한 인플레이션이 장기적 추세가 될 것이라는 근거가 되긴 어렵다.
셋째,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의 성격도 있다. 국가 간 이동 제한이 장기화하다 보니 주요 산업의 노동인력 공급이 부족해졌다. 농어촌 지역이나 제조 및 건설공사 현장에 외국인 노동인력이 부족해 정상적인 생산활동이 이뤄지지 못하고, 인건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도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을 뚜렷하게 설명해 준다. 주요 지역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전기 공급이 끊기거나 화재 등의 재난이 발생함에 따라 올해 상반기부터 차량용 반도체 공급 대란이 발생했다. 구인난과 인건비 상승, 원자재와 반도체 등의 중간재 가격 상승은 수입물가 및 생산자물가 상승 그리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비용상승 요인도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국지적으로 발생한 재난·재해이거나 코로나19 종식 시 완화될 수 있는 압력들이다. 따라서 비용상승도 인플레이션 위협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저효과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상승률은 460개 품목의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등락을 측정한 것이다. 소비자가 지출하는 주요 품목들의 현재 가격을 전년 동월과 비교해 등락률을 계산하는 구조다. 결국 지난 6, 7, 8월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6, 7, 8월의 가격과 비교한 것이다. 지난해 2분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공장이 셧다운되고 교통량·물동량·항공운송이 마비 상태에 이르러 국제유가가 선물시장에서 마이너스 37달러를 기록했고,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까지 떨어졌던 시점이다. 그때와 비교한 올해 월별 물가상승률이 다소 높게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몇 개월 높은 물가상승률이 발생했다고 인플레이션 공포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고용회복 지연과 이자 부담 증가 속
식료품 등 상승세는 저소득층에 큰 타격

지난 7월 IMF는 올해와 내년 선진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각각 2.4%, 2.1%로 전망했다. 지난 8월 한국은행은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올해는 2.1%로, 내년에는 목표 물가상승률 2%를 밑도는 1.5%로 전망했다. <그림 2>를 보면 2000년대 3.5% 수준이던 물가상승률이 2010년대 이후 1%대로 내려왔다. 오히려 구조적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체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GDP 디플레이터도 2019년 1분기부터 2020년 1분기까지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다가, 코로나19 충격 이후 소폭 상승하는 추세여서 오히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착한 인플레이션’(benign inflation)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을 정도로 만드는 상황, 즉 리플레이션(reflation)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있긴 하지만 내년에 인플레이션 위협이 찾아올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물가압력이 저소득층에 불균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는 안정적일지라도 식료품 등의 몇몇 필수재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고용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근로소득이 뚜렷하게 증가하기 어렵고, 시중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이자상환 부담은 가중될 것이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 생활물가 상승이 상당한 고충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겨울 한파, 설 연휴, 가축 전염병 등의 계절적 요인으로 일부 품목의 가격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에 식료품 수급안정을 위한 정책적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