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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후생 극대화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2021년 10월호


한 국가의 경제 내에서는 여러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소비된다. 물가란 이러한 재화·서비스 가격의 종합적인 수준을 의미하고,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일정 기간 상승한 정도를 나타낸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1970년대 고물가를 경험하며 인플레이션을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당연히 구체적인 물가안정 도모 방안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고, 그중 물가안정목표제가 가장 널리 채택됐다. 1990년대 초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 등에서 운용되기 시작한 물가안정목표제의 핵심은 중앙은행이 달성하고자 하는 명시적인 인플레이션 목표수치의 제시에 있다. 이런 방식은 추상적인 글보다 이해하기 쉬운 숫자를 목표로 제시해 경제주체들의 이해를 높이고 미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안착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중앙은행(ECB)과 한국은행도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먼저 ECB의 물가안정목표제는 1998년 물가안정을 유로지역 소비자물가지수의 연간 상승률이 ‘2% 미만’인 경우로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2003년에 ‘중기 기준 2% 근접 하회’로 정책 목표를 명확하게 했는데 여기에서 ‘중기’는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과 GDP 등에 영향을 미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2~3년의 시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물가는 재화·서비스 수요 증가에 따라 상승하기 마련인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보다 낮은 방향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ECB가 경기과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보다 높아지는 것을 반대의 경우보다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러나 지난 7월에는 이러한 기준을 중기 기준 2%로 변경하고 정책 대응의 상하 허용범위를 대칭적으로 설정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을 초과하거나 미달하는 경우 모두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이와 같은 정책 전환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랫동안 지속돼 오다가 최근 코로나19로 더욱 심화된 유로존의 경기부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ECB의 의지를 보여준다.
한국은행의 경우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물가안정목표제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4년부터 3년 단위로 중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설정 및 변경하며 탄력적으로 운용해 왔는데, 가장 최근 기간에는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 2%의 목표치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ECB와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을 지속적으로 상회 혹은 하회할 위험을 균형 있게 고려하고, 중기적 시계에서의 물가안정목표 달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물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연준은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8월 평균물가목표제로 운영체제를 전환했다. 평균물가목표제와 물가안정목표제는 각각 도로 위에서 속도위반을 판별하는 지점단속과 구간단속에 비유할 수 있다. 특정 지점에서의 속도위반 여부를 판정하는 지점단속과 마찬가지로 물가안정목표제는 특정 시점(현재)의 인플레이션만을 기준으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반면 평균물가목표제하에서는 일정 기간의 평균 인플레이션을 바탕으로 정책을 운용하는데, 인플레이션이 지난 몇 년 동안 2%를 밑돌았다면 평균 2%에 이를 때까지는 2%를 웃돌더라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이는 처음 일정 구간에서 구간단속 제한속도보다 느리게 달린 자동차가 나머지 구간에서는 규정 속도를 초과하더라도 구간 제한속도의 평균을 넘지 않으면 단속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준은 이러한 정책 전환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후퇴에서 충분히 회복되기 전에는 통화정책을 성급히 긴축적으로 변경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각국에서는 물가안정 추구 이외에 소득불평등·기후변화 등 새로운 경제 이슈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 증대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물가안정과 더불어 금융안정의 추구가 통화정책의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책무들을 전통적인 물가안정목표와 어떻게 조화롭게 달성할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중앙은행과 경제주체 간 더욱 긴밀한 의사소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적은 물가안정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사회후생 극대화라는 근본적 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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