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대봉쇄를 불러왔던 코로나19 위기는 전방위적인 정책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극복되고 있다. 경기회복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통화정책 정상화 논의는 확대되고 있으며, 코로나19 위기 진압의 선봉에 섰던 미국 연준 역시 정상화 시그널을 내비치고 있다. 이르면 올해 11월, 연준은 매월 1,200억 달러 이상 매입하고 있는 채권 규모를 줄여나가는 테이퍼링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 연준의 정상화는 ‘테이퍼링은 늦지 않게, 기준금리 인상은 신중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수순에 따르면 테이퍼링, 양적완화 종료 이후 기준금리 인상으로 나아가는데, 양적완화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인상 여건이 만족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에 따른 시점 확보 차원에서 테이퍼링을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연준은 물가상승 압력이 점진적으로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으며 일각에선 인플레이션에 대한 연준의 인식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와 통화당국으로부터 유동성 공급이 계속돼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과 물가상승의 악순환(wage-price spiral)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최대 고민거리였던 저물가 압력이 여전히 유효하다 하더라도 언제나 위기는 경제구조 변화를 야기했듯이, 연준 역시 구조적으로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연준은 늦어도 올해 연말에 테이퍼링을 시작하고 자산매입 축소 속도도 과거보다 다소 빠르게 진행해 내년 3분기에는 양적완화를 종료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이는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일 뿐이며 양적완화가 예상보다 조기에 종료된다 해도 금리인상으로 직결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개정한 통화정책 전략을 보면 연준의 속내를 알 수 있는데, 연준은 향후 통화정책 운영에서 물가보다 고용에 방점을 둘 것이며 고용에 대한 목표도 ‘광범위하고 포용적인 고용회복’으로 변경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의 경기회복이 불균등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취약계층의 고용회복까지 확인한 후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는 것이다. 매파적 연준 인사들의 금리인상 발언은 내년에도 계속되겠지만, 조기 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한편 선진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상화 경험을 교훈 삼아 선제적 금리인상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과감하게 금리를 인상했다. 이는 국내 경제의 코로나19 타격이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나, 수년 동안 경제 취약점으로 간주돼 온 가계부채와 주택시장 과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데 기인한다. 특히 금리인상을 늦추면 늦출수록, 종국에는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채무부담 때문에 정책 정상화가 어려워지는 부채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어 선제적 금리인상의 명분이 됐다. 일련의 금융불균형 누증 문제는 일회성 금리인상으로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한은은 연내에 추가적인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이고, 내년이면 기준금리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1.25%로 복귀할 것이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빠르게 극복한 것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전방위적인 정책 대응과 함께 과거 위기를 진압해 가는 과정에서 쌓아온 중앙은행의 정책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통화정책 정상화 역시 테이퍼링 경험과 연준의 노련함으로 시장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신중한 정상화는 금융시장에 골디락스(물가안정 속 호경기) 신호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준 내 정책 이견과 적정 대차대조표 수준 논란, 코로나19 이후에 더욱 강해진 재정의 화폐화 압력 등은 여전히 시장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