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외교는 외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통 행위로, 국제 행위자들, 특히 국가들이 외국 국민과의 의도적인 소통을 통해서 자국의 외교정책 목적을 증진하고자 하는 실천적 행위다. 이때 매력 자산, 즉 문화나 정치적 가치, 정책과 같은 소프트파워 자산을 외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성공적인 공공외교는 다시 소프트파워의 증진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긴밀한 관계에 있는 소프트파워와 공공외교는 공히 국가중심성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국가중심 공공외교는 19~20세기 민족주의와 국민국가(nation-state) 시대의 부산물이다. 타자를 대상으로 자기를 알리는 것이 공공외교 본연의 역할 중 하나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화, 드라마, 음악부터 음식, 방역에 이르기까지 자랑스러운 것에는 ‘K’ 접두사를 붙여서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매력과 장점을 알리는 것이 금세기 한국 공공외교의 골간을 이뤄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자기중심성, 자국중심성을 넘어서는 공공외교를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글로벌 이슈들의 특징 때문이다. 21세기에는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에 따른 글로벌 스페이스, 글로벌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국가 간 경계가 더욱 희석되고,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를 초월하는 세계의 상호연계성과 다양성이 부각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와 같은 세계의 상호연계성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여실히 입증하고 있으며, 국가나 민족을 넘어서는 초국가적인, 전 인류적인 공조와 협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더불어 특히 현재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오늘날 국제적 현실과 구조는 물질적 힘의 재배분과 더불어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이 ‘배타적 정체성의 정치’ 및 자유주의 대 반자유주의 간 ‘가치의 진영화’라는 형태로 대립적이고 대결적인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자국중심적 공공외교는 국제사회에서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같은 중견국 공공외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개별 국가들이 해결할 수 없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절박한 문제들을 감안할 때, 이제 국가중심 공공외교를 넘어서 인간중심의 공공외교를 지향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둘째, 공공외교의 차원에서는 나의 주관적 시각과 입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설득하기보다는, 상대방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이해와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접근이 요청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배타적 정체성의 정치 시대에는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고자 하는 공감(empathy)의 노력과 능력이 필요하다.
셋째, 단기적인 국가이익과 외교정책 실현에 기여하는 공공외교의 수단적 기능의 함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공공외교는 이미 결정된 외교정책의 소통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외교정책의 입안과 결정 과정의 일부가 돼야 할 것이다.
넷째, 가치의 진영화가 심화되고 미중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적 구조하에서는, 중견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 및 비국가행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나 주제, 이슈를 중심으로 포용적이고 협력적인 공동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노력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평화와 안보, 기후변화, 보건안보 등 특정 이슈에 대한 ‘공동의 이해와 의미’를 생성해 내고 공동의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한 담론과 이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공공외교, 즉 ‘규범 공공외교’의 플랫폼 국가로서의 도약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제 개별 국가중심적 소프트파워가 아니라, 협력하는 연대의 집단적 소프트파워를 창출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