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대 대선 결과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갈등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국민의 절반은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고, 계층·지역·세대·성별로 나뉘어 분열과 대립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갈등과 대립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단순히 여야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국민통합을 쉽게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실시한 ‘제9차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7%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이러한 인식은 센터가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래로 9년간 변함이 없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과거 여야 정권이 교체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갈등관리는 미흡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통합을 위해 갈등해소를 국정의 우선순위에 두고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소선구제 중심의 선거제도는 표의 등가성을 훼손하고 승자독식의 정치, 적대적 공생 정치로 갈등을 구조적으로 양산한다. 선거제도를 시급히 개선하고 국회가 갈등해소를 위해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이 요청된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상황과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경제적 양극화를 더욱더 심화시켰다.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문화적 성공은 우리에게 자긍심도 주지만, 경제적 양극화란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정교한 부동산 대책과 소득 재분배 정책이 중요하다.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또한 국민통합의 장애물이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 이견을 존중하되 공감대를 찾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문화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갈등관리를 위한 법·제도 마련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난 2007년 정부는 갈등관리를 위한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갈등관리 수단을 제도화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고 법제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정부의 갈등관리 규정은 현재까지도 대통령령으로 불안정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중앙정부 차원의 갈등관리 노력은 미흡한 실정이며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없다.
또한 국민통합을 위해 역대 정부가 운영했던 국민통합기구는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현 정부에서 폐지됐다. 2017년 ‘신고리 공론화’를 계기로 갈등해소와 숙의민주주의 수단으로 주목받던 공론화 절차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의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차기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와 숙의 기구’ 운영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국민통합기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불필요한 건 아니다. 국민연금 개혁, 젠더 갈등 등 쉽지 않은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론화 절차의 활용은 긴요하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고 사회발전의 기폭제로 활용될 수도 있다. 다행히 차기 정부는 시대정신을 국민통합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수사적인 구호가 아니라 관련 정책수단과 갈등관리 법·제도 정비를 통해서 국민통합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