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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 낭비, 회의실 제약 없었던 지난 2년…‘우연’ 사라진 건 아쉬워
김석영 카카오 광고플랫폼기획팀 2022년 06월호


국립국어원이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편집하는 온라인 사전 ‘우리말샘’에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남자를 이르는 말”로 ‘집돌이’라는 단어가 수록돼 있다. 그건 바로 나를 아주 적절하게 일컫는 단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2020년 2월 회사에서 전면적인 재택근무를 선택하자 집돌이인 나는 이 상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IT회사에서 하는 업무는 기획이다. 사용자들이 겪고 있거나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항을 정리해, 화면을 구성하고 개발하는 부서들과 조율하며 인터넷 세상에서 무언가 작동하는 기능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시장조사, 문서정리, 회의’의 반복인 업무는 어느덧 2년이 넘도록 회사 한 번 나가지 않고도 고스란히 집에서 재현됐다.

누군가는 “이러한 전면 재택의 상황에서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란 우려를 했다. 하지만 독자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업무를 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업무 지연은 곧 전체 프로젝트의 지연으로 이어진다. 재택이라고 태만한 자세를 취했다간 화살이 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 덕분에 회사는 문제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이건 재택근무 이전에 이미 업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과 업무처리 과정을 표준화한 환경이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비공개할 중요 사안이 아니라면 모든 업무 과정을 공유하도록 돼 있고 심지어 회사 대표라도 누구나 쉽게 참조를 걸어서 호출할 수 있었다. 이미 프린트 한 장 없이 각종 온라인 도구를 활용해 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의 업무가 회사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었고 서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편리했던 부분은 회의실에 대한 제약이 없어진 점이다. 회사에서는 회의실을 예약하지 못하면 회의를 미뤄야만 했는데, 재택근무 기간에는 언제든 손쉽게 수백 명까지 참여할 수 있는 화상회의를 열어서 빠른 의사결정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세 미만의 자율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자녀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각 집안의 사정에 따라 고충이 될 수 있었다. 회사는 그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돌봄휴가’라는 제도를 신설해 완충했다. 낮에 돌봄휴가를 쓰고 유연근무제에 따라 새벽이나 저녁시간에 업무를 보충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회의실 제약으로 지연됐던 시간보다 빠른 업무가 가능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런데 집돌이인 나조차도 지난 2년간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마는데, 바로 ‘우연’이 없어진 것이다. 도서관이나 서점의 책들 사이를 배회하면서 경험하는 ‘발견’과 같은, 층간 회의실을 오가거나 식사를 하면서 스쳐 지나가던 사소한 대화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 우연들이 아이디어로, 보다 발전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지난 2년간 하지 못했다.

IT회사라면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재택근무의 편의를 본 이상 코로나 이전으로 똑같이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보다 빠른 업무처리가 가능할 수도 있었던 2년간의 경험과 사람의 얼굴을 마주해야 나오는 시너지 사이에서 회사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현실을 완벽하게 가상으로 구현한 메타버스가 등장하기 전까진 그 어느 절충 선에서의 근무형태가 자리잡길 바라는 것이 집돌이의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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