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자막 제작원, 필름색 보정기사, 플라즈마 영상패널 생산 기술자. 이들의 공통점을 아시는지?
아마도 앞으로 다시 명함에서 만나기 힘든 이름들이다. 2020년 한국고용정보원은 2011년부터 2019년까지의 사업장 직무를 조사한 뒤 「한국직업사전 통합본 제5판」을 발간했다. 이때 사라진 직업이 앞선 예시를 포함해 18개였다.
시대가 변하며 사라진 직업은 한둘이 아니다. 버스 안내원이 한 사례다. MZ세대는 잘 모를 수 있는 직업이겠으나, X세대(70년대생)의 어린시절 기억 속엔 또렷이 남아 있을 것 같다. 수십 년 전 이들은 정거장을 안내하고, 승하차 때 승객 안전을 관리하고, 요금을 받고 잔돈을 거슬러 주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버스에 각종 IT 기술이 접목되며 추억 속에만 남게 됐다.
사라진 직업이 있으면 새로 등장하는 직업도 분명 있다. 「한국직업사전 통합본 제5판」에 따르면 한국 직업은 1만6,891개다. 1969년 첫 직업사전 발간 시 3,260개에서 다섯 배 넘게 늘었다. 2012년 발간된 제4판에 비해서도 5천여 개가 불어났다. 최근 이들 직업이 새로 생겨난 것은 과학기술 발전, 인구학적 변화, 사회 환경 및 제도 변화의 영향이었다.
직업이 사라지고, 또 새롭게 등장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는 위기이고 누구에게는 기회가 된다는 의미다. 시장이 성장하기는커녕 쪼그라드는 산업에 종사한다면,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 쉽지 않고 좋은 대우를 받기도 어려울 수 있다. 어쩌면 멀쩡하게 일하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해고되는 사태를 마주할 수 있는 노릇이다. 반면 성장하는 산업과 직무를 찾아간다면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안정적으로 일에 매진할 가능성이 높다.
직업의 변화 흐름 속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세상의 변화에 예민하게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 즉 ‘메가트렌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례로 디지털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변화로 새 직업이 다수 탄생했는데, 이러한 트렌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데 전문가 견해가 일치한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인공지능(AI), 6세대 이동통신, 블록체인, 3D 기술, 양자컴퓨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로봇 등의 키워드에 주목해야 한다.
신기술과 관련 없는 산업에 종사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해당 산업의 ‘디지털 전환’ 과정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 된다. 미디어산업의 변화가 좋은 사례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지상파 방송과 종이가 가졌던 ‘매체’로서의 가치가 떨어진 게 사실이다. 기업광고 상당수도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런 변화에도 미디어 종사자가 과거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성장 가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콘텐츠 제공자’로 재정의하고, 유튜브나 SNS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문성을 이어나간다면 직업의 새 장을 열 수 있다.
아울러 과거보다 전문성이 더 중요해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직업의 기준은 ‘어느 회사 소속’이 아니라 ‘어떤 일(직무)을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과거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와 맥을 함께한다.
전문성을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일하거나, 회사를 자유롭게 고르는 추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긱잡(gig job)’이라는 단어가 이를 상징한다. ‘긱(gig)’은 1920년대 미국 재즈 클럽이 섭외한 단기 연주자를 부르는 데서 유래한다. 필요에 따라 임시로 업무를 맡기는 ‘긱이코노미(gig economy)’ 시장도 커졌다. 초기에는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 종사자 등을 주로 일컬었는데, 점차 전문성 높은 임시직 종사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가 일을 하고 싶을 때만 하고 높은 연봉을 받는 사례를 들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전문성이 자신의 업(業)의 가치를 증명한다.
기업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과거 ‘한 가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열 가지 일을 잘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이런 사람에게는 직무 적합성과 상관없이 다양한 일을 맡겼다. 하지만 지금은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아닌 ‘적소적재(適所適材)’의 시대다. 적합한 사람을 먼저 고민한 뒤 그 사람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먼저 분석한 뒤 그 일에 맞는 사람을 찾는 식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나만이 가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