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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은 시민에게 어떤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가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저자 2022년 09월호

필자는 전국을 답사하면서 한국 시민들이 어떤 조건의 땅에 자리한 어떤 형태의 집에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답사를 통해 확인한 현실을 토대로 많은 시민이 살 만한 집에서 살기 위해 공공부문에 기대하는 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국토개발연구원장을 지낸 김의원 선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6.25 전쟁 이후 외국의 원조기관들은 7평 정도의 소형 주택을 많이 지어 주택난을 해결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오막살이집을 지으라는 것이냐”라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대신 1962년 마포아파트를 비롯해 중대형 아파트 건설에 몰두했다. 북한과의 주택보급률 경쟁에 밀리고 사회 불안이 극에 달해서야, 한국의 공공부문은 몇십 년 전 외국 원조기관들이 제안한 소형 주택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간 정부가 본연의 업무를 저버리고 민간 영역을 침해했다는 ‘오점’은 지워지지 않는다(김의원 『실록 국토부』 및 『국토백상』,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공공부문은 여전히 소형 주택에 인색하고 중대형 주택 건설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다수 시민이 중대형 주택을 원한다”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부동산에 관계된 공공부문, 나아가 오피니언 리더들의 착각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도시의 승리』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국지적 현상이다. 하지만 오피니언 리더들은 자신들이 접촉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과도하게 일반화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공론화해 왔다.

한국에서도 공공부문에서 근무하는 시민들의 경제력과 학력이 점점 높아지면서 자신과 다른 조건의 시민들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이 점점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의 오피니언 집단에서는 ‘집’이라는 단어가 ‘신축 고층아파트 단지’와 동의어가 돼버린 것 같다. 하지만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가 『아파트와 바꾼 집』에서 언급했듯 모든 시민이 ‘주차장에서부터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신축 고층아파트’에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모든 시민이 그러한 조건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한국에는 중소형의 장기임대주택이 부족하다. 임대주택을 대형으로 짓고 단기임대 후 일반분양하는 행태는 1970년대 초 개봉아파트 이래로 무수히 반복됐다. 이렇다 보니 진정한 임대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번동 영구임대주택을 1990년 준공하고는 동판까지 제작하는 생색을 냈다. 원래는 공공부문이 6.25 전쟁 이후부터 해왔어야 하는 본연의 업무다. 공공부문은 영구임대주택 또는 최소 20~30년 수준의 중소형 임대주택을 계속해서 지어야 한다. 
일각에서 기대한 것처럼 소셜 믹싱이라는 가치만이 정답은 아니다. 도시에서 차지하는 임대주택 주민의 비율이 높아져서 그들이 발언력을 갖도록 하면 된다. 또한 청년주택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연령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임대주택 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청년보다 중고령의 저소득층이 더 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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