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5년간의 주택공급 청사진이 지난 8월 16일 나왔다. 이른바 ‘8.16 대책’으로 불리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규제를 풀어서 민간 중심으로 전국의 입지 좋은 곳에 2027년까지 주택 27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나 안전진단 등 그동안 도심 내 재건축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하고, 공공만 참여할 수 있었던 역세권 도심 고밀 개발사업도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공급속도를 높이기 위해 주택사업의 인허가 기간도 대폭 단축하고, 청년·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청년원가주택’과 ‘역세권 첫집’도 추진한다.
주택공급의 양과 속도뿐 아니라 품질도 높인다. 신규 공공택지는 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인접한 지역을 중심으로 홍콩 코우룬과 같은 ‘콤팩트 시티’ 형태로 고밀 개발하고 층간소음 개선과 주차편의 제고 등을 유도한다.
연도와 사업유형별로 인허가 기준 공급물량을 체계화한 것도 특징이다. 당장 내년에 서울 8만 호를 비롯해 전국 47만 호의 주택공급능력을 확보하고, 2027년까지 서울엔 50만 호, 전국 270만 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사업유형별로는 정비사업을 통해 5년간 전국에 52만 호, 공공택지와 국유지를 활용해 88만 호 공급이 추진된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목표물량이 실제 공급으로 실현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정부의 목표물량은 인허가 기준으로, 실제 주택이 지어져 분양되는 입주물량과는 다른 개념이다. 특히 이번 대책에는 앞으로의 계획표만 제시됐을 뿐 규제 완화가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례로 정부는 재건축 부담금이 과다 부과되지 않도록 면제금액을 상향 조정하고 실수요자나 고령자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겠다며 9월 중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여소야대 국회 구성을 고려하면 정부안대로 법이 개정될지 불투명하다. 재건축의 첫 관문으로 꼽히는 안전진단은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선할 수 있지만, 이 개선방안 역시 이번 대책엔 담기지 않았다. 정부는 지자체의 재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연내에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1기 신도시 재정비는 올 하반기 연구용역에 착수해 2024년 중 마스터플랜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대책이 ‘속 빈 강정’이란 비판도 나온다. 특히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대선공약 파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주택 매수수요 급감까지 겹치면서 분양가 상한제와 같은 규제 완화 없이는 민간의 주택건설 공급유인이 약하다는 점도 난제다. 반면 규제 완화에 따른 시장 자극을 최소화하면서 주택공급을 늘리려면 이번 대책에서처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대책 발표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월 16일 취임사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8월 17일) 안에 주택공급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라고 약속한 데 따라 이뤄졌다. 어쨌든 약속대로 청사진은 제시됐으니 그대로 제도 개선과 공급작업이 잘 이뤄지는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