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부터 유통기한이 사라지고 ‘소비기한’이 도입된다. 이는 식품 폐기량을 감소하고, 폐기되는 식량의 경제적인 가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식품위생법」을 통해 식품별 유통기한을 설정함으로써 기술적 측면에서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적 접근이 유통기한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야기했다는 데 있다. 식품에 대한 국가적 관리는 쉽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못 먹는다’라는 고정관념을 형성했다.
최근 전국(제주도 제외) 10대 이상 소비자 1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2%가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고, 81.2%가 유통기한이 경과한 제품의 섭취를 꺼렸다. 또한 ‘절대 섭취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이유로 60.9%가 ‘섭취 시 배탈, 설사 등 몸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되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78.4%는 유통기한이 지난 가공식품을 섭취해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즉, 유통기한이 판매기한이라는 점과 유통기한이 지나도 섭취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인지는 있지만, 언제까지 섭취 가능한지는 모르기 때문에 폐기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소비기한은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뜻한다. 언뜻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둘에는 차이가 있다. 두 기한을 설정하는 방법을 보면, 일반적으로 유통기한은 식품의 제조일자에서 품질의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까지의 기간에 안전계수 0.7을 곱해 계산된다. 다시 설명하면 유통기한은 제조업체에서 유통기한 설정실험 가이드라인에 따라 식품을 먹어도 되는 100%의 기간 중 70%로 설정한 것으로, 유통기한은 실제 소비자가 먹어도 되는 70%의 시간만 지난 것을 의미한다. 반면 소비기한은 안전계수를 0.8~0.9로 늘려 설정된다.
이렇게 계산된 소비기한은 생산 이후의 유통 및 소비 과정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약 56%의 소비자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폐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소비자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폐기하는 행태는 유통기한이 만든 고정관념이다. 요즘 시대에 냉장고가 없어서 상온 보관을 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소비기한이 보관조건을 전제하는 만큼, 보관조건을 준수할 경우 식품의 질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유지된다.
소비기한을 도입하면 식품 폐기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조금 더 직접적인 예시를 들어보면 이렇다. 한국소비자원 조사결과, 우유의 경우 제품에 표기된 유통기한은 약 10일이지만 밀봉한 상태로 냉장보관이 잘된 경우 +50일이 소비기한이 된다. 또한 식빵의 유통기한은 3일이지만 소비기한은 +20일이다. 소비기한 도입으로 식량 낭비를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비기한 도입은 국제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식품 무역 문제와 식품 표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판매가능, 진열가능의 의미를 가진 ‘Sell by Date’를 삭제하기로 2016년 제43차 회의에서 합의했고, 2018년 7월 최종 결정했다. 영국도 2011년 9월 유통기한을 삭제했다. 미국, EU, 호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소비기한을 사용하고 있다.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되면 판매기한이 연장되며 손실 비용 및 식량 낭비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철저한 사전준비도 필요하다. 시간 중심의 유통기한 표기를 시간과 온도 중심의 소비기한 표기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유통환경 등이 같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