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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유의 호칭문화로 세는 나이와 만 나이의 동거 당분간 불가피할 듯
임명묵 『K를 생각한다』 저자 2023년 02월호


얼마 전 국회에서 만 나이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나는 2023년에 세는 나이로 서른이 됐는데, 내 친구들 중에서는 20대가 좀 더 연장됐다며 좋아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식 나이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오가는 것 같다. 그간 나이에 따라서 철저히 서열을 나누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일단 지고 들어가는’ 한국의 ‘나이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꽤 예전부터 제기되던 이런 불만이 근래에는 중장년층에도 수용돼, 나이 차이가 아무리 나도 일단은 존댓말을 전제하는 것이 기본이 됐다. 오래 교류해서 많이 친해져도 계속 존댓말을 고수하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 나이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한국어의 특성도 함께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가까운 사이에서 형, 누나, 오빠, 언니와 같은 호칭을 쓰는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제 조금만 사이가 멀어도 나이 차이가 난다고 바로 반말을 하면 몰상식한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라, 나이문화는 오히려 가까운 관계에서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관계문화가 발전한 청년층 사이에서도 친한 사이라면 상기한 호칭들을 쓰는 것은 여전히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혹자는 나이주의가 나이에 따른 서열을 전제하는 호칭문화와 맞물려 관계의 위계를 고착화한다고 비판한다. 이때 한국어에서 대등한 관계를 부르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함께 문제로 등장한다. 하대할 때도 쓰이는 호칭 ‘야’가 대표적인 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 한국어 특유의 호칭문화로 만 나이 개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식 나이가 일상에서 계속 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언어를 배우고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사회화를 시작하는 학교는 여전히 1년의 주기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만 나이가 일상이 된다고 전제하면, 1년 과정 안에서 호칭에 계속 혼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차라리 1년을 기점으로 모두가 발맞춰 나이를 먹는 방식이 소위 ‘교통정리’를 하기에 제일 적합하다. 형, 누나, 언니, 오빠라는 호칭의 강력한 존재감을 한국어에서 지울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와중에 나이와 결부된 호칭문화가 K컬처의 인기를 타고 세계 전역에서 ‘매력적인 한국문화’로도 수용되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이들은 한국어 ‘oppa’나 ‘unnie’,심지어 ‘maknae’ 같은 말에 대해, 거기에 전제돼 있는 특유의 가족적이고 친밀한 어감이 좋다며 호감을 표한다. 물론 그들의 일상에서 쓰이지는 않겠지만 K컬처의 세계화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미래에는 한국에서 ‘적폐’라고 비난받던 수직적 호칭들을 세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지금 한국식 나이문화는 숱한 갈등 끝에서 나름의 최적점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모든 관계를 나이로 환원해 수직적 위계를 강요했던 과거는 이미 끝났다. 대신 한국식 나이는 호칭 어휘와 결합해 한국 특유의 ‘찐한’ 관계문화를 유지시키는 기반이 됐다. 물론 한국인들 중 이런 문화에 질려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미 한국인의 정신과 언어생활에 강하게 자리 잡은 나이문화와 호칭을 깔끔하고 완전무결하게 수평적으로 바꾸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게다가 오히려 한국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일각에서는 이를 독특하고 재밌는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도 있다. 그렇게 만 나이와 세는 나이의 동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으니, 이 동거가 자연스레 정착된다면 미래에는 옛 사람들이 ‘나이주의 철폐’를 갖고 그렇게 싸웠던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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