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부터 나이의 법적·사회적 기준을 만 나이로 통일하기로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의무와 권리가 연령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때는 아무래도 출생 후의 육체적·지적 성숙도와 노화의 정도가 중요할 것이니 국제표준인 만 나이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껏 만 나이가 아닌, 한국식이라 일컫는 세는 나이를 써왔을까?
세는 나이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도 귀중한 생명이라 해서 수태 기간의 1살에다 출생 후에 보낸 ‘설’(새해 첫날)의 수를 더한 나이다. 바로 ‘설’에서 나이의 단위인 ‘살’이 나왔다. 나이를 세는 단위인 한자어 ‘세’(歲)도 ‘해’를 뜻하므로 ‘설’과 매한가지다.
‘나이’는 ‘낳다’에 접미사 ‘이’가 붙어 생겨난 말로, ‘ㅎ’이 탈락해 ‘나이’가 됐다. 낳은 날로부터 얼마가 지났는가를 따지는 단위다. 그러나 서양처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의미하는 단순한 양적 개념이 아니다. 영어 ‘How old are you?’는 출생 후 보낸 시간을 의미하기에 ‘몇 살 몇 개월’까지 답한다. 반면 한국인에게 ‘나이’는 시간의 새로운 시작점인 설날을 기준으로 하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즉 단순한 지속이 아니라 단위 시간의 누적 개념인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인간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단위 시간 속의 특정한 지점에 인간이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변화한다는, 그리고 사람도 우주의 한 부분이어서 이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는 동양적인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적용된 세는 나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것은 저 우주 속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에 내재화된다. 한국어에 존재하는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이 이를 입증한다. 도대체 어떻게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왜 한국어에는 이 같은 표현이 있을까? 사실 문헌 부족으로 이 문제에 학술적인 답을 내기는 어렵다. 다만 ‘먹다’와 결합하는 다른 표현들의 존재를 근거로 간접적으로 추정할 뿐이다.
예컨대 우리는 ‘마음을 먹는다’고 한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을 하라든가, 그가 앙심을 먹고 투서를 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한다. 나아가 우리는 ‘겁’도 먹고 ‘충격’도 먹는다. 또 ‘욕’과 ‘꾸지람’, ‘핀잔’도 먹는다. 또 ‘더위’를, ‘이자’나 ‘이문’을 먹는다고도 하며, 부당한 방식으로 수익 따위를 가로채거나 차지할 때 ‘돈’을 먹는다거나 ‘뇌물’을 먹는다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수수료를 ‘꿀꺽 삼킨다’는 표현도 쓴다.
이 같은 표현들은, 추상적인 행위나 활동은 본래 개념화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그보다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경험, 예컨대 신체경험 같은 것에 빗대 표현하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나온 것들이다. 특히 먹는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행하는 원초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 전달력이 가장 강력하다 할 수 있다.
한편 사람이 먹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물에 어떤 성분이 배어들어 가는 현상도 ‘먹는다’고 한다. 옷감에 ‘풀’이 잘 먹는다, ‘화장’이 잘 안 먹는다, 천이 ‘물기를/습기를/기름을’ 먹는다, 솜이 ‘물’을 먹었다와 같은 표현들이다. 이는 먹는 행위를 매개로 해 나이를 몸에 내재화하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는 사례라 하겠다.
이러한 내재화를 직접 나타내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가 든다’는 표현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이가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나무의 나이가자기 몸 안에 나이테로 육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나잇살’이라는 표현의 존재도 이를 지지해 주는 또 다른 증거인데,세월이 내 몸 안에 살의 형태로 축적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말은 나이를 먹었지만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할 때도 쓰인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왜 그러세요?”라면서.
시간을 몸 안에 내재화할 수 있는 한국인들이여, 이제 비록 법률적으로는 단순 지속 개념인 만 나이로 전환하지만, 한국식 세는 나이의 본래 취지대로 수태 기간의 생명도고려함으로써 새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설날을 기점으로 나이를 먹음으로써 지난 시간을 성찰하고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것도 부디 잊지 않고 간직하기를 바란다.